살기 위해 사는 일 / 김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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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 사는 일 / 김명기
  • 김명기 시인
  • 승인 2023.01.28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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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 사는 일 / 김명기

새해가 되었다. 쉰다섯 살이다. 생각해보면 생의 8할이 씁쓸한 패배였다. 대관령을 넘지 못한 대학생활이 그랬고, 그러므로 늘 영 아래 7번 국도를 떠돌았다. 결혼도 폭망했고, 빚도 지고 시는 참담하게 모든 공모와 신춘문예를 피해갔다. 작품을 발표하며 겨우 시인이 됐다. 영을 넘어 간 친구들이 이름을 대면 알만한 회사의 중견이 되고 대학병원 교수가 되고 벤츠 s클라스를 끌고 다니는 사업가가 되는 동안, 나는 7번 국도에서 36번 국도변으로 영 너머로부터 더욱 멀어졌다.

지천명이 될 때까지 열등과 패배에 순응했다. 그러나 또 생각해보면, 엄혹한 시절 그나마 대학을 다녔고, 그 이력으로 취업을 했고 결혼도 했었다. 빚보증도 섰다. 아무도 내 시를 봐주지 않는 것 같았지만, 등단도 못 한 내게 지면을 준 ‘시평’이라는 문예지도 있었다. 흔쾌히 시집 세 권을 내준 출판사도 있었고, 그중 세 번째 시집은 뜻밖의 지지와 응원을 받았다.

영을 넘지 못해 시를 썼고, 겨우 시인이 되었지만 내 시를 시집으로 묶어준 좋은 편집자들을 만났다. 내 몸을 움직여 빚을 갚았고 문화면에 난 기사를 보고 영을 넘어간 친구들에게 축하 전화를 받았다. 씁쓸했으므로 이 악물고 살았다. 패배라고 생각했던 8할의 시간이 내게 남겨 놓은 것은 상처가 아니라 끈질김이었다. 끈질기게 일하고 끈질기게 쓰고 살기 위해 살았다.

아직은 내 시집을 선계약하겠다는 출판사가 있고, 내 몸은 노동에 유효하다. 55세, 친구들은 은퇴를 걱정하지만 나는 늘 그랬듯 새 밥벌이를 찾으며 시를 쓴다. 또 또 생각해보면 패배란 특정함이 없는 혼자만의 열등이었을 뿐이다. 나는 살기 위해 살아온 사람. 살기 위해 살아갈 사람. 그게 무엇이든.

[쉼표] 독자 여러분! 다시 생의 첫 새해입니다.

오랜 역병과 녹녹치 않은 삶이 여전합니다.

그래도 다시 살기 위해 잘 살아 내시길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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