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茶 그리고 香氣] 다정한 돼지 / 김미소(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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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와 茶 그리고 香氣] 다정한 돼지 / 김미소(1989~)
  • 김명기 시인
  • 승인 2022.12.11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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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돼지 / 김미소(1989~)

그건 이미 지나간 구름, 감정 없는 인간을 고기라고 부르자, 다정한 가족을 해체하고 싶다 정숙하지 않은 기분을 숙성시켜야지, 가끔은 냉동고 속 근황을 살핀다 돼지들은 잘 있습니까 아무쪼록 변질되지 않는다 돼지는 돼지일 텐데, 냉동고 틈 사이로 흐르는 핏물은 왜 흥건해지는 걸까 바닥이 고이는 건 왜 도축당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피를 흘리잖아, 틈을 노리잖아 이건 냉동고 옆 망초꽃이 어른이 되어도 밥을 굶어도 키가 자꾸만 자라는 것과 같은 일, 죽어서도 등급을 얻습니까 어른이 된 것 같았는데, 완성된 인격인 줄 알았는데……. 변이된 돼지입니까 돼지들은 그들만의 언어로 답한다 꿀꿀, 그래, 진화하는 돼지가 돼야지, 회피하는 창문과 문밖의 사정, 누군가 고기를 굽는지 연기가 피어오르는 금요일 화목한 돼지들은 사려 깊은 저녁을 품고 사니까, 그걸 행복이라 말하면 눈이 따갑다 돼지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돼지와 나의 그림자가 겹친다 두 손으로 표정을 움켜쥐며 걸어 들어간다 전원이 꺼진 냉동고로.

[쉼표] 나는 더 이상 해독 불가능한 시에 대해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해독이 불가하다는 건 나의 무지일 수도 있고, 의도된 불가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일군의 젊은(생물학적 단서가 아닌 형태적 분석의) 시인들은 용케도 그 유행을 벗어 던지고 시의 본연으로 귀환했거나 출발하고 있다.

오늘 읽은 김미소 시인의 첫 시집 『가장 희미해진 사람』(걷는사람 시인선 74, 2022)도 그중 하나다. 물론 해독이 가능하다고 모두 좋은 시라고 말할 수 없다. 개별적 삶을 치열하게 살아 낸 증거를 시에서 보여 줄 때 좋은 시에 대한 가능성을 말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김미소의 시는 좋은 시라는 생각이다.

태생적으로 시(문학)는 불우 혹은 불행을 숙주로 삼는다. 그것은 개별적일 수도 있으며 환경이나 시대에 기인하기도 한다. 대부분 불우와 불행을 탓하거나 포기하고 살아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안타깝지만 문학도 그 부분을 치유할 힘을 갖지 못했다. 다행히 그런 삶을 스스로 자각하며 풀어내는 방식으로 문학을 선택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들은 스스로 치유함과 동시에 확장적 세계관으로 소통되기도 한다. 그래서 문학은 태생적인 불우와 불행을 공감하며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첫 시집은 자신의 어느 부분을 감추거나 속이지 않는다. 때로는 너무 속속들이 자신을 드러낸다. 그것이 첫 시집의 힘이다. 김미소 시인의 첫 시집 역시 그간 자신의 행로를 또렷하게 밝히고 있다. 시를 읽으며 몇 번이나 공감하고 안타까웠으며 토닥여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마음은 시를 쓰는 동료나 선배가 아닌 독자로서도 능히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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