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茶 그리고 香氣] 거룩한 식사 / 황지우(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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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와 茶 그리고 香氣] 거룩한 식사 / 황지우(1952~)
  • 김명기 시인
  • 승인 2022.10.23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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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식사 / 황지우(1952~)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을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 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 세상 떠 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에서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파고다공원 뒤편 순대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 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쉼표] 밥은 개별적 삶을 관통하는 줄기입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밥 걱정하며 살지요. 물론 밥이 단순히 식사라고 보면 굶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나 밥은 질과 양으로 나뉘고 또한 계급이기도합니다. 이 문제는 수 천년 동안 이어져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절대적 빈곤을 지나왔습니다. 그때의 밥은 생존의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고도성장기를 거쳐 밥굶는 일이 사라졌지만 밥은 여전히 한 생의 전부입니다. 어떤 밥을 벌 것이며, 어떻게 나눌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아있습니다. 단순히 생존의 문제가 아닌 셈이 되어버렸습니다.

며칠 동안 참담하고 끔찍한 뉴스를 들었습니다. 23세의 젊은 여성노동자가 일터에서 죽었고, 고층건물에서 시멘트 타설하던 노동자가 두명이나 죽었습니다. 일년으로 따지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밥을 벌다 목숨을 잃습니다.

오늘은 황지우 시인의 ‘거룩한 식사’를 읽으며 개별적인 삶들의 밥을 생각합니다. 밥은 누구에게나 거룩하지만, 밥은 잔인하기도 합니다.

밥을 벌다 생을 마감한 모든 사람을 가만히 추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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