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茶 그리고 香氣] 오늘의 냄새 / 이병철(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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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와 茶 그리고 香氣] 오늘의 냄새 / 이병철(1984~)
  • 김명기 시인
  • 승인 2022.09.26 14: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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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냄새 / 이병철(1984~)

낮이 화창하면 저녁은 우글거린다. 쇠고기 스튜, 까르미네르 와인, 음식물 쓰레기,

달, 키스, 피, 오이비누. 냄새가 모인 골목엔 아이들이 뛰어놀고, 냄새를 못 맡는 노인

들은 스스로 냄새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익숙함을 기억할 뿐 코는 감각하지 못한다.

담배와 꽃, 쇠와 유리 사이로 아까시가 우유처럼 엎질러지는 오늘, 냄새와 향기는 어떻

게 다르지? 냄새는 향기를 흉내 내고 향기는 어쩔 수 없이 냄새가 된다. 나는 네 향기보

다 냄새가 좋아. 우리가 누운 자리에서 음식물 쓰레기가 된 쇠고기 스튜와 키스가 된 까

르미네르 와인과 오이비누에 씻겨나간 핏물 위로 달이 부풀었다. 너한테서 모르는 냄새

가 난다. 이제 우리는 코와 새끼발가락만큼 멀어질 거야. 너는 발을 코에 갖다 대며 웃었

다. 웃음소리가 잦아들자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우리는 한참 말이 없었다. 이미 죽은

땀 냄새 살 냄새가 우리의 마음이야. 창문을 열자 새벽이 짙은 몸을 방 안으로 밀어 넣었

다. 냄새가 나지 않는 사람은 귀신, 서로의 냄새가 너무 익숙한 우리는 귀신처럼 새벽을

걸었다. 손을 잡아도 손이 없고 어깨를 빌려줘도 머리가 없는.
 

[쉼표] 향기와 냄새는 어떻게 다를까요. 이병철 시인의 시를 읽으며 문득 궁금해집니다. 둘 다 후각이라는 감각으로 느낄 수 있지만, 향기와 냄새는 다릅니다.

이병철 시인은 이 둘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냄새는 향기를 흉내 내고 향기는 어쩔 수 없이 냄새가 된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찌되었던 이 시는 냄새라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지속적인 의문을 제기합니다.

이 시는 상상력이 어떻게 시로 발현되어서 발전되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누구나 냄새와 향기를 구분할 수 있지만, 그것이 어떻게 구분되는지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냄새는 현재이자 미래고 과거입니다. 기억과 예측이 가능하지만 함께 있는 동안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그것에 대해 이병철 시인은 “손을 잡아도 손이 없고 어깨를 빌려줘도 머리가 없는.” 이란 문장을 통해 냄새를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는 이렇게 늘 가까운 곳에서 발현되지만 그 의미는 무한대로 증폭되는 힘을 갖습니다.

오늘은 잘 빚어진 상상력의 시를 소개해봅니다.

바람이 바뀌고 일교차가 심한 계절입니다. 자칫 심한 감기로 냄새를 잠시 잃을 수도 있습니다. 환절기 건강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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