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茶 그리고 香氣] 기다리는 사람 / 최지인(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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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와 茶 그리고 香氣] 기다리는 사람 / 최지인(1990~)
  • 김명기 시인
  • 승인 2022.08.29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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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사람 / 최지인(1990~)

회사 생활이 힘들다고 우는 너에게 그만두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이젠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했다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우리에게 의지가 없다는 게 계속 일할 의지 계속 살아갈 의지가 없다는 게 슬펐다 그럴 때마다 서로의 등을 쓰다듬으며 먹고살 궁리 같은 건 흘려보냈다

어떤 사랑은 마른 수건으로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어내는 늦은 밤이고 아픈 등을 주무르면 거기 말고 하며 뒤척이는 늦은 밤이다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 것은 고작 설거지 따위였다 그사이 곰팡이가 슬었고 주말 동안 개수대에 쌓인 컵과 그릇 등을 씻어 정리했다

멀쩡해 보여도 이 집에는 곰팡이가 떠다녔다 넓은 집에 살면 베란다에 화분도 여러 개 놓고 고양이도 강아지도 키우고 싶다고 그러려면 얼마의 돈이 필요하고 몇 년은 성실히 일해야 하는데 씀씀이를 줄이고 저축도 해야 하는데 우리가 바란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키스를 하다가도 우리는 이런 생각에 빠졌다 그만할까 새벽이면 윗집에서 세탁기 소리가 났다 온종일 일하니까 빨래할 시간도 없었을 거야 출근할 때 양말이 없으면 곤란하잖아 원통이 빠르게 회전하고 물 흐르고 심장이 조용히 뛰었다

암벽을 오르던 사람도 중간에 맥이 풀어지면 잠깐 쉬기도 한대 붙어만 있으면 괜찮아 우리에겐 구멍이 하나쯤 있고 그 구멍 속으로 한 계단 한 계단 내려가다 보면 빛도 가느다란 선처럼 보일 테고 마침내 아무것도 없이 어두워질 거라고

우리는 가만히 누워 손과 발이 따듯해지길 기다렸다

[쉼표] 세기말이 지나고 21세기가 되면서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계급)는 더욱 세밀하게 나누어졌다.

이른바 계약직과 비정규직의 시대가 되었다. 구인사이트에는 온갖 알바와 최저시급이 난무하다. 세상은 급속도로 변해가고 그 변화에 맞추기 위해 사람은 끝없이 끌려 다닌다.

시인은 이 시대를 암흑기라고 보는 것 같다. 불행한 일이지만 나 역시 그의 시선에 동의한다. 주목할 것은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내야 할 세상을 버리지 않는 시선이다.

이 차분하고도 곡진한 톤의 시를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그래도 괜찮아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괜찮지 않다’. 그러나 괜찮지 않음 뒤에 오는 절망은 감당하기 매우힘들다. 그 절망은 절망이 오기 전에 끊어버려야 한다.

괜찮지 않음의 시대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최지인 시인은 그것을 말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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