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 / 김백형(1967~)
귤이 익으면 몇 칸의 방이 되지요? 아빠도 시의 집을 지어요, 가난한 사람들 입에 별무리 터지는 소리 자꾸만 고이게, 아빠도 아빠의 껍질을 까서 군침 도는 시를 나눠 주세요
잠든 아이들 동그랗게 옮겨 놓고 껍질은 두 팔 벌려 덮었다 편다 새콤하고 달콤한 말들이 꽉 차 있다
어둠도 심장에 주홍빛 귀를 기울인다
[쉼표] 누군가의 첫 시집을 읽는 일은 아주 큰 일이다.
‘첫’ 이란 말은 얼마나 큰 말인가.
언젠가는 멀고도 아득 해질 ‘첫’ 이라는 순간.
그 순간을 위해 무려 30년 만에 첫 시집을 낸 김백형 시인의 표제작 귤을 읽는다. 새콤달콤하게 귤 알갱이처럼 잠든 아이들. 언어는 상상을 거치며 무한 확장된다.
시가 가지는 힘이나 매력은 바로 그 확장성에 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말로 쓴 시를 읽을 때면 왜 시를 쓸까 하는 의문이 든다. 누구나 다 이해 할 수 있지만 누구나 다 쓸 수 없는 문장이 비로소 시다.
김백형의 첫 시집은 그런 확장의 언어가 가득해서 좋았다.
왜 안 그렇게나 무려 30년 동안 쓴 시에서 가려진 시들.
이 또한 언젠가는 아득한 순간이 될 테지만, ‘첫’ 시집이 되기 위해 아득한 시간을 견뎌온 문장들이 입속에서 새콤하고 달콤하게 톡톡 터지는 중이다.
저작권자 © 울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