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茶 그리고 香氣] 시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 김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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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와 茶 그리고 香氣] 시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 김명기
  • 김명기 시인
  • 승인 2022.05.09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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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 김명기

오늘은 제가 최근에 가장 많이 받은 질문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다소 긴 글입니다.
지난달 울산 강연 때 마지막 질문도 비슷한 내용이었습니다.

질문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지인이 자신이 쓴 시라며 며칠에 한편씩 시를 보내는데, 차마 읽기가 힘든데 어떻게 거절해야할지, 그렇다면 어떤 시가 좋은 시인지”라는 질문입니다.

난감한 상황입니다. 어떤 시가 좋은 시인지 콕 집어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좋은 시’는 자기가 쓴 시가 아니라 자기가 읽은 시 중에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어쩌다 들어오는 시창작 강의는 모두 거절합니다. 제가 가르쳐서 쓸 수 있는 게 시라면 좋겠지만, 시는 배운다고 되는 일도 아닙니다. 제게 그럴 능력이 없다는 걸 잘 압니다.

우선 시를 쓰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권하는 것은 시를 많이 읽으라는 말을 합니다. ‘많이’라는 것을 단위로 환산한다면 ‘엄청’이라고 표현해야겠지요. 저는 지금까지 세권의 시집을 냈습니다. 대략 백육십 편정도입니다.
아직까지는 운이 좋아 시집을 묶자는 제안을 해온 출판사에서 시집을 냈습니다. 그런 출판사가 더 이상 없다면 그게 언제든 시를 그만 쓰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십년 가까이 제가 쓴 시가 백육십 편뿐일까요? 일 년에 스무 편을 썼다면 사백 편입니다. 습작기간을 합치면 천편이상의 시를 쓴 것 같습니다. 그럼 나머지는 다 어디로 갔을까요. 버렸습니다. 가장 많이 착각하는 지점이 여기입니다. 시인이 시를 한 번에 한편을 쓴다는 생각은 대단한 착각입니다.
시 한편이 일 년 걸리는 시도 있습니다. 초고를 쓰고,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고 그래도 원하는 시가 안 되면 버려집니다.

그럼 읽은 시는 얼마나 될까요. 집으로 오는 동료 시인들의 시집이 한 달 3~4권 정도입니다. 거기에 이런 저런 인연으로 오는 문예지들까지, 모두 정독을 하지는 않지만 시집은 가급적 정독을 합니다.
제가 고향에 온지 십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받은 시집이 삼백권정도입니다. 대학 때부터 지금껏 사서 본 시집이 대략 육백여권 정도입니다. 권당 55편 정도를 잡아도 어림잡아 오만 편의 시를 읽은 셈입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시는 얼마나 될까요. 백편 정도입니다. 서가에는 꽂혀있지만 제 기억에는 없는 시집도 있을 겁니다. 며칠에 한편 씩 그렇게 시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쓴다고 다 시가 되는 일도 없습니다. 시는 시의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과거의 이야기를 시로 데려올 때도 지금의 시공에서 벗어나면 안 됩니다. 어떤 연결고리가 분명해야합니다.

소월의 시는 매우 좋은 시가 맞습니다. 다만 그가 활동했던 1920~30년대의 시의성에 비추어 볼 때 그렇다는 말입니다. 우리 시어를 풍부하게 했다고 평가받는 백석의 경우도 1940년대에 활동했던 시인입니다. 20세기 초의 언어로 만들어진 문장입니다. 지금은 21세기이고, 그때 사용가능했던 어휘와 지금 사용 가능한 어휘는 얼마나 차이가 날까요. 아마 고려와 조선을 합친 천년 동안 사용한 어휘보다, 그 백 년 동안 새로 태어난 어휘가 훨씬 많을 겁니다.

그런데 아직도 소월이나 백석 시의 시의성을 따라간다면 그것은 지금의 시에 전혀 맞지 않습니다. 시와 시집을 읽지 않는다는 반증입니다. 기껏해야 유명시인의 시 몇 편정도가 전부일 것입니다. 그런 분들을 탓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굳이 시인이 될 필요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좋은 시를 읽고 더 나아가 쓰고 싶다면 그 이상을 해야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시나 문학이 아닌 다른 일도 모두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는 습작과정에서 유명한 시인들의 시를 필사를 하는 것을 그다지 권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미 그들의 문장이고, 그것을 열심히 필사한들 자신의 것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시를 읽고 서툴러도 자기 문장을 계속 써 보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습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집의 정독입니다. 그 많은 시를 읽으며 자기와 다른 시각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과 다른 문장을 쓰기 위해 습작을 해야 합니다. 남의 시를 자꾸 베껴 서서 무엇에 쓰겠습니까.

이 글은 오만편의 시를 읽으라는 이야기도 아니고, 시인이 되는 방법을 이야기 한 것도 아닙니다. 저보다 훨씬 많은 시를 읽고 훨씬 좋은 시를 쓰는 시인이 많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취미가 ‘시 쓰는‘ 일이 되면 안 됩니다. 그럴 바엔 우선 좋은 독자로 좋은 시집을 가려 읽는 안목을 넓히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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