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茶 그리고 香氣] 돈 / 박용하(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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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와 茶 그리고 香氣] 돈 / 박용하(1963~)
  • 김명기 시인
  • 승인 2022.04.25 1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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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 박용하(1963~)
 

나는 어느덧 세상을 믿지 않는 나이가 되었고
 

이익 없이는 아무도 오지 않는 사람이 되었고

이익 없이는 아무도 가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부모형제도 계산 따라 움직이고

마누라도 친구도 계산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그게 싫었지만 내색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고
 

너 없이는 하루가 움직이지 않았고

개미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쉼표] 시인 박용하를 마지막으로 본 건, 내 첫 시집이 나왔을 무렵이니 십년도 훨씬 전이다.

강릉 출신인 그는 경기도 양평 오빈리에 기거하며 그가 대학을 다녔던 춘천과 고향인 강릉에 이따금 출몰했다.

그는 핸드폰도 없었고, 그 즈음에도 워드보다 손으로 시를 즐겨 쓴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다고 그의 삶이 빈곤했던 것도 아니다.

박용하 시인은 문명의 역방향 또는 파괴되어가는 인간관계에 대한 유난한 집착이 있다.

그러나 시인은 상황에 대해 결정하거나 영향을 끼칠 수는 없다. 다만 집요하게 왜냐고 묻는다.

오늘 소개한 박용하의 시도 그런 인간관계의 불화와 문명의 비문명성을 비판하는 시다.

박용하 시의 이런 흐름은 최근에 나온 여섯 번째 시집 『26세를 위한 여섯 개의 묵시』(2022. 달아실)에서도 이어진다.

“나는 그게 싫었지만 내색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고”라는 문장처럼 시인 자신의 이중성을 빗대어 우리 모두의 이중성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실 문명은 파괴의 힘으로 일어선다. 그러니 문명의 역방향이나 불화야 말로 문명의 또 다른 방향이 아닐까.

아이러니하게도 문명이 발달할수록 점점 가난한 사람이 늘어나고 있지 않나.

문명의 폭력과 비문명적 행위들도 함께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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