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 필 때의 일 / 김명기 (1969~)
군복 입은 젊은이가
담배 한 모금 길게 빨더니
휠체어에 앉은
초로의 사내 입에 물린다
입을 꼭 다문 채 몇 모금
타들어 간 재를 받아 털고
다시 물린다
휠체어 두 바퀴위에
텅 빈 소매가 소곳하다
목련꽃잎 봉긋한
나무 아래의 일이다
[쉼표] 오늘은 저의 세 번째 시집 중에서 한편을 올립니다.
독자들은 짧은 시가 읽기 편하고 쓰기에도 힘들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긴 시는 어떨까요. 짧은 시보다 긴 시가 쓰기 훨씬 더 어려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의 경험이나 동료들의 경험에 미루어 볼 때 긴 시는 한 호흡으로 빠른 시간에 끝까지 밀고가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산문에 가까운 초고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순간적인 감정의 몰입은 끝을 내지 못하면 다시 그 감정으로 돌아가기 힘듭니다. 그렇게 쓴 초고를 다시 고치는 작업을 거치기는 하지만 보통 1~2시간 안에 초고를 씁니다.
긴 시의 출발은 순간적 감정의 최고조입니다.
처음부터 시를 쓴다는 생각보다 떠오르는 생각을 그냥 펼쳐놓는 것이지요.
물론 그렇게 쓴 시간보다 고치는 시간이 훨씬 길어지기는 합니다.
반면 짧은 시는 감정을 억제합니다. 처음부터 의도된 시입니다.
내가 본 것을 시로 써야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합니다. 몇 줄 쓰다가 다시 덮어두어도 됩니다. 좋은 문장이 떠오르면 덮어두었던 시에 첨부를 합니다.
며칠 몇 주 혹은 해를 넘기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짧은 시에는 드러나는 것 보다 감추어야 할 게 더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 보여드린 시를 구구절절 쓰려면 하염없겠지요. 그러나 저 상황에 서 있는 두 사람이 그렇게 될 때까지의 연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저 짧은 순간의 이면은 모두 숨겨져 있습니다. 시를 쓴 사람이나 읽는 사람의 상상에 맡겨지는 것입니다.
이 시를 뺀 나머지의 시간은 얼마나 슬프고 처절했겠습니까. 그 시간을 지나 어느 봄날 두 사람은 저렇게 서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야기가 좀 길었습니다. 역병과 산불이라는 재난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봄입니다.
그래도 봄입니다. 살아있으면 살아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