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茶 그리고 香氣] 영목에서 / 윤중호(1956~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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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와 茶 그리고 香氣] 영목에서 / 윤중호(1956~2004)
  • 김지훈
  • 승인 2022.02.28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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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목에서 / 윤중호(1956~2004)

​어릴 때는 차라리, 집도 절도 피붙이도 없는 처량한 신세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뜬구름처럼 아무 걸림 없이 떠돌다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때는 칼날 같은 세상의 경계에 서고 싶은 적이 있었다. 자유라는 말, 정의라는 말, 노동이라는 말, 그리고 살 만한 세상이라는 말, 그 날 위에 서서 스스로 채찍질하며 고개 숙여 몸을 던져도 좋다고 생각했다.

한때는 귀신이 펑펑 울 그런 해원의 詩를 쓰고 싶었다. 천년의 세월에도 닳지 않을, 언듯 주는 눈길에도 수만 번의 인연을 떠올려 서로의 묵은 업장을 눈물로 녹이는 그런 詩.

이제 이 나이가 되어서야, 지게 작대기 장단이 그리운 이 나이가 되어서야, 고향은 너무 멀고 그리운 사람들 하나 둘 비탈에 묻힌 이 나이가 되어서야, 돌아갈 길이 보인다.

대천 뱃길 끊긴 영목에서 보면, 서해 바다 통째로 하늘을 보듬고 서서 토해내는 그리운 노을을 가르며 날아가는 갈매기. 아무것도 이룬 바 없으나, 흔적 없어 아름다운 사람의 길, 어두워질수록 더욱 또렷해

[쉼표] 윤중호 시인의 시전집 『詩』가 출판사《솔》에서 발간되었다.

시인이 세상을 버린지 18년만이다. 생전 시인은 네권의 시집과 한권의 산문집 그리고 세권의 동화책을 냈다.

이번 전집은 네 권의 시집과 미처 세상으로 내보지 못한 유고시들이 묶였다.

윤중호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충청도다.
많은 시인들이 지역을 말하지만 윤중호처럼 일관되게 충청도를 고집한 시인은 드물다.

대체로 소위 중앙이라 불리는 그곳을 지향한다. 나 역시 지역에 머물며 시를 쓰지만 누군가 나를 지역의 시인으로 한정지을 때 그 말은 지엽적이다란 말로 들린다.

그러나 곁가지도 결국 나무의 한부분이다. 그 지엽이 모여 풍성한 한 그루를 만드는 것이다. 빼곡이 사람들로 가득한 윤호중의 시전집을 읽으며, 문득 시집 속의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처럼 세상을 버린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디선가 아직 자기 삶을 도생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시를 무엇이다라고 말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그러나 시는 하나의 기록이란 사실은 명확하다.
한시인의 생애가, 그 시인이 살아 낸 시대가 고스란히 詩라는 제목으로 기록되어있다.

한동안 그의 기록에 눈길이 머무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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