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리 / 박설희(1964~)
바람을 입는다
두 눈에 해를
가슴에 달을 품고
맨 앞에 내세운 부리
끝이 닳아 있거나 금이 가 있거나
그것은 집 짓고 사냥하고 깃털 고른 흔적
그 속에 감추어져 있다
찻잎 같은 혀
그리고 공룡의 포효보다
야무진 침묵
발을 뒤로 모으고
허공을 가로지를 때
앞세운다,
제 존재가 무엇보다 크고 귀중하다 일러주는
따뜻한 부등호
[쉼표] 새에게 부리와 날개가 있다면 사람에겐 손과 발이 있습니다. 노동과 이동의 수단입니다.
부리의 상처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손은 그 사람이 지나온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다만 감추어져 있을 뿐입니다.
새나 사람이나 살아가는 방법은 그다지 달리 보이지 않습니다. 새에게도 욕망이나 욕심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생명을 가진 채 살아가는 것들은 부리든 손이든 입이든 노동의 대가로 삽니다.
하지만 유독 사람은 그 대가에 대한 욕망과 욕심을 드러냅니다.
박설희 시인은 새의 부리를 통해 순수한 노동과 그 대가로 침묵하는 새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제 존재의 증명을 위해 보다 높은 곳으로 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새는 이미 높은 곳에 존재하니 그런 욕망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소개한 시는 박설희 시인의 세 번째 시집 『가슴을 재다』(2021 푸른사상)에 수록 된 시입니다.
사람에게 따뜻한 부등호는 무엇일까요.
새의 부리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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