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茶 그리고 香氣]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1912 ~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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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와 茶 그리고 香氣]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1912 ~ 1996)
  • 김명기 시인
  • 승인 2021.12.25 1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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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1912 ~ 1996)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쉼표] ​여섯 번에 걸쳐 김수영과 백석의 시를 다루었다.

오늘 소개한 백석의 시는 개인적으로도 손꼽는 좋은 시다.

지금 읽어도 시의 미학적 측면에서 현대시로 손색이 없다.

이런 시를 1940년대에 썼다는 것이 경이롭다.

김수영과 백석은 철저히 자기 세계를 시로 담아낸 시인들이다. 김수영은 시대의 통렬한 비판자로 백석은 확장된 시의 언어로 우리 시단의 기준점이 되어주었다.

여전히 수많은 시인과 연구자들에게 호명되고 존경받는다. 더러는 이 두 시인이 너무 과대평가 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이들이 한국문학에 끼친 영향력은 차고 넘친다. 실제로 많은 시인들이 이들의 시를 읽으며 시인의 삶을 꿈꾸었고 시단에 발을 들여놓았다.

필자도 그렇다. 1988년 누군가의 자취방에서 읽었던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라는 시가 준 충격은 결국 나를 시의 길로 이끌었다.

김수영과 백석의 시는 전혀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있지만 마치 다른 뿌리에서 뻗어 나와 한 몸이 되는 연리지(連理枝)처럼 풍성한 잎과 열매를 맺었다.

이것으로 김수영과 백석을 짧게나마 함께 읽었다.

다음 회 부터는 다시 새로운 시인들의 시를 소개할 생각이다.

산골의 마가리에 살고 있는 나도 푹푹 나리는 눈을 기다리며 한해가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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