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 김수영(1921~1968)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쉼표] 시인 백석이 풍부한 어휘로 서정시의 묘사성을 끌어 올렸다면, 김수영 시인은 상징을 내세워 의미에 초점을 둔 시인이다.
그의 시 ‘풀’은 많은 독자와 시인들이 가장 애송하는 시다. 김수영의 시중 비교적 쉽게 의미가 전달되는 시다. ‘풀’ 이외에도 ‘폭포’같은 시가 동종의 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시는 김수영을 사실주의 시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김수영은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경계 없이 시작활동을 하였다.
시를 읽는 독자입장에서는 그의 경향성까지 깊게 알 필요는 없지만 이 독특한 시의 경향은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여전히 연구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가 어떤 경향의 시인이었던 간에 한국시단에 끼친 영향은 대단하다.
이 시에 나타난 ‘풀은’ 민중(民衆)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개인적 서사일수도 있다.
어떻게 읽고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굳이 시인이 의미하는 바와 달라도 무방하다.
시는 느낌의 문학이다. 그것도 아주 짧은 순간을 포착한 느낌으로 한편의 시가 이루어진다. 그 느낌은 독자와 시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읽히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시는 세상에 발표될 때 확장성을 갖게 된다.
짧게나마 김수영의 시 세편을 연재했다. 다음시간에는 백석의 세 번째 시로 김수영과 백석의 시세계를 마칠까 한다.
이 글은 두 시인에 대한 깊은 연구라기보다 시를 쓰며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쓴 짧은 단평이다. 그러니 나와 다른 느낌을 가진다고 해서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 시단의 축복 같은 두 시인을 이렇게라도 함께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