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茶 그리고 香氣] 정주성(定州城) / 백 석(1912~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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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와 茶 그리고 香氣] 정주성(定州城) / 백 석(1912~1996)
  • 김명기 시인
  • 승인 2021.11.29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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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성(定州城) / 백 석(1912~1996)
 

산(山)턱 원두막은 비었나 불빛이 외롭다

헝겊 심지에 아주까리기름의 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잠자려 조을던 무너진 성(城)터

반딧불이 난다 파란 혼(魂)들 같다

어데서 말 있는 듯이 크다란 산새 한 마리 어두운 골짜기로 난다
 

헐리다 남은 성문(城門)이

한울빛 같이 훤하다

날이 밝으면 또 메기수염의 늙은이가 청배를 팔러 올 것이다
 

[쉼표] 1908년 11월 창간된 《소년》이란 잡지에 발표한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우리 현대시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백석은 1930년대 활동한 시인이다. 불과 20년 만에 현대시에 한 획을 그은 셈이다.

단조로운 향토적 가락에 젖어있던 시단을 풍요로운 어휘로 돌려세운 시인이 백석이다.

하지만 식민지 조선의 현대문학은 일본을 거쳐 들어온 것이었으므로 그것을 모방했다고 보는 견해도 많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결국 예술의 종결은 작가 자신에게 있다.

풍요로운 북방의 언어로 써 내려간 백석의 시는 그 시절 누구도 생각지 못한 시적 구상이었다. 백석의 시는 언어가주는 이미지가 강렬하다.

이번에 소개하는 ‘정주성’을 찬찬히 읽어보면 쇠락한 오래된 성터가 눈앞에 그려진다.

지금은 많은 시가 이미지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 시절의 시는 이미지보다 언어 자체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기실 현대문학의 많은 실험적 작품은 1950년 이전에 끝났다고 봐야한다. 그 후의 작품들은 대체로 아류작이다.

안타깝게도 그리 오래 시단에 머물지 못하고 고향인 평북 정주로 돌아가 버렸다.

그가 남쪽에 남았더라면 우리현대시는 진작에 더욱 풍부한 이미지의 개념을 가질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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