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茶 그리고 香氣] 너를 잃고 / 김수영(1921~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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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와 茶 그리고 香氣] 너를 잃고 / 김수영(1921~1968)
  • 김지훈
  • 승인 2021.11.14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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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잃고 / 김수영(1921~1968)
 

늬가 없어도 나는 산단다

억 만 번 늬가 없어 설워한 끝에

억만 걸음 떨어져있는

너는 억 만개의 모욕이다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은 꽃들

그리고 별과도 등지고 앉아서

모래알 사이에 너의 얼굴을 찾고 있는 나는 인제

늬가 없어도 산다
 

늬가 없이 사는 삶이 보람 있기 위하여 나는 돈을 벌지 않고

늬가 주는 억 만 배의 모욕을 사기를 좋아하고

억만 인의 여자를 보지 않고 산다

나의 생활이 원주 우에 어느 날이고

늬가 서기를 바라고

나의 애정의 원주가 진정으로 위대하여지기 바라고
 

그리하여 이 공허한 원주가 가장 찬란하여지는 무렵

나는 또 하나 다른 유성을 향하여 달아날 것을 알고
 

이 영원한 숨바꼭질 속에서

나는 또한 영원한 늬가 없어도 살 수 있는 날을 기다려야 하겠다

나는 억만 무려의 모욕인 까닭에.
 

[쉼표] 김수영의 시중 많이 읽히는 시가 ‘너를 잃고’다.

이 시는 반어적 표현의 상징적 시다. 자신의 속마음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시다.

여기서 말하는 ‘늬가’가 그의 부인인 김현경 여사인지 아니면 김수영의 거제도 포로수용소 수감 당시 연정을 느꼈던 간호사에 대한 표현인지는 알 수 없다. 1953년에 쓴 이 시는 한국전쟁 후유증으로 염세주의나 패배주의 혹은 퇴폐주의 예술이 횡횡하던 시절이다.

물론 시단의 정서는 여전히 전통 서정시였지만 이 시절 그것을 넘어 자신만의 시를 썼던 시인들이 있다. 대표적 시인이 김수영, 박인환, 변영로 같은 시인이다. 그 중 단연 돋보이는 시인이 김수영이다.

유희적 수사에서 멀리 벗어나 있는 김수영의 시는 직설적이고 반어적인 수사를 향해 나아간다. 그의 시에는 사랑에 대한 시가 거의 없다. 지금 이 시는 거의 없는 시 중 한 편이다.

늬가 없이 살 수 없는데, 시인은 늬가 없이도 살수 있다고 쓴다. 일종의 몸부림이라고 봐도 좋겠다. 마지막 연의 2행에 그의 진짜 마음이 들어난다.

“나는 또한 영원한 늬가 없어도 살 수 있는 날을 기다려야 하겠다” 앞의 늬가 없어도 산다는 말은 결국 ‘페이크다’ 김수영의 시를 읽을 때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반어적 페이크다.

그의 시에는 시적 장치로 숨어있는 상징이 유난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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