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茶 그리고 香氣] 곧, 봄 / 김길녀(196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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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와 茶 그리고 香氣] 곧, 봄 / 김길녀(1964~2021)
  • 김명기 시인
  • 승인 2021.05.24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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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봄 / 김길녀(1964~2021)
 

뜻밖에 눈을 만난 삼월 언저리

기차는 강원도로 가고 있다

펄펄 내리는 시린 햇살 속

―삼월에 웬 눈이람―

나한정역과 홍정역 사이에서

풍경들이 덜컹거리자

건너편 여자가 흰 지팡이를 꼭 쥐었다

여자의 눈이 된 지 오래인 듯

흰 지팡이는 닳아 있었다

여자는 귀로 무언가를 보는 듯

창밖으로 오랫동안 고개를 돌리고 있었고

가끔 여자의 미간이 섬세하게 흔들렸다

두 눈 뜨고도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

여자의 볼우물에서 피어나는

복사꽃 꽃잎, 꽃잎

기차는 비로소 고개를 넘는다
 

[쉼표] 생(生)과 몰(歿)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목숨입니다.
목숨이 사람에게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누군가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숙연해집니다.

더더욱 생전에 가까운 사이였다면 숙연함을 넘어서 큰 슬픔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비 내리는 날 가깝게 지냈던 시인의 부고는 슬펐습니다. 병마에 시달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끝내 목소리 한 번 듣지 못하고 부고를 받았습니다.

자신의 병을 알리고 싶지 않았던 시인의 뜻을 거스르고 싶지 않았습니다.

부군과 자식들 외에는 문상조차 받지 않은 깨끗한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리고 남쪽 어딘가 주목나무 아래 잠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나한정과 흥정역에 가 보고 싶습니다.

이미 폐역이 된 스위치백 구간에서 천천히 역행하던 기차의 창밖을 더듬어 보고 싶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그 풍경도 그리울 것입니다.

시도 시인도 그만 저물었습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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