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茶 그리고 香氣] 모란이 가면 작약이 온다 / 신은숙(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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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와 茶 그리고 香氣] 모란이 가면 작약이 온다 / 신은숙(1970~)
  • 김명기
  • 승인 2021.01.11 1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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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이 가면 작약이 온다 / 신은숙(1970~)

나는 작약일 수 있을까,

문득 작약이 눈앞에서 환하게 피다니
거짓말같이 환호작약하다니

직박구리 한 마리 날아간 허공이
일파만파 물결 일 듯
브로치 같은 작약 아니
작약 닮은 앙다문 브로치 하나
작작 야곰야곰 피다니

팔랑,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작약은 귀를 접는다
그리운 이름일랑 죄다 모아
저 귓속에 넣으면
세상의 발자국도 점점 멀어져
나는 더 이상 기다리는 사람이 되지 않으리

산사에 바람이 불어
어떤 바람도 남지 않듯

 

[쉼표]

201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신은숙 시인의
첫 시집『모란이 가면 작약이 온다』(파란시선2020)이 칠년 만에 나왔다.

시집이 나오기 전 이 시를 어느 지면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시집의 시 보다 훨씬 긴 시였다. 시집을 묶으며 가지를 정리했다.

다시 시를 읽으며 느낀 것은 군살이 없다는 것이다.

시를 쓰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써 놓은 문장을 버리는 게 쉽지 않다.

가장 첫 감정에 이끌려 쓴 시는 거칠고 군더더기가 있지만,
가장 순순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퇴고 과정을 거치지 못하면 결국 자기만족의 시만 남을 뿐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몇 번이고 읽어보면 거슬리고 거친 문장들이 보인다.

이 시의 가장 좋은 문장은 마지막 연이다.

“바람이 불어 어떤 바람도 남지 않는” 느낌을 다른 문장으로 표현했다면
그 느낌이 정확히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나 느껴본 적 있는 상황을 시의 적절하게 그대로 쓴 문장은 깔끔하고 신선하다.

첫 시집은 읽을 것이 많다.

시인에게 첫 시집이란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쓴 시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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