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茶 그리고 香氣] 햇볕의 구멍 / 김점용(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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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와 茶 그리고 香氣] 햇볕의 구멍 / 김점용(1965~)
  • 김명기 시인
  • 승인 2020.12.1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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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볕의 구멍 / 김점용(1965~)


​   전철 지붕과 공동묘지 지붕이 나란한 곳에 왔습니다​

   토요일 오후였으나 갈 곳이 없던 저는

   공동묘지로 올라가 무덤 옆에 누웠습니다

   얼마나 잤을까요?

   문득 내 옆자리에 누운 풀을 보니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누웠다 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도 외롭고 무덤도 외롭고

   무덤에 내린 햇볕도 외롭고

   문인석도 상석도 외로워 얼어 있었습니다

   햇볕과 무덤이 서로를 껴안고 잠들었겠지요

   햇볕이 구멍을 열고 무덤을 꺼내 안았습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갈 곳이 없습니다

   저 멀리 날아가는 검은 비닐봉지 안에 내 살림이 담겼습니다

[쉼표] 시의 상상력은 시인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가 심하게 아프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는 지금 큰 병원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가는 중이다.

우환 중에 그의 세 번째 시집이 나왔다.

시집 속에는 병마와 싸우는 시인의 이야기도 있다.

투병도 투병이지만 자신과의 싸움에서 그는 충분히 외로울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아스트로싸이토마라는 성상세포종이 자라는데 이것이 밤하늘의 별무리모양처럼 생겼다고 한다.

밤하늘의 별무리는 아름답지만 그것이 사람 머릿속에서는 고통이 된다는 걸 그의 시를 읽으며 알게 되었다.

가끔 어디론가 떠나고 싶지만 갈 곳이 없을 때가 있다.

그것은 막막함이다. 그는 정말 더 이상 갈 곳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외롭고 막막할지도 모르겠다.

삶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 죽음 앞의 외길이다.

다만 그 외길이 평탄한지 굴곡이 심한지가 다를 뿐이다.

삼십 촉 전구처럼 어두운 그의 머릿속이 백 촉 전구처럼 반짝 빛났으면 좋겠다.

이제 그만 굴곡의 길에서 벗어나 평탄한 길로 돌아오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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