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茶 그리고 향기] 일몰에 기대다 / 배교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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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와 茶 그리고 향기] 일몰에 기대다 / 배교윤
  • 김명기
  • 승인 2020.06.01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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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지 전 짧아진 길

  마로니에 공원을 서성거리다

  서울대병원 오랜 수령의

  은행나무 위로 붉어지는

  일몰의 하늘을 바라본다

  저물 때만 잠시 아름다운

  착시에 몸을 기대는 시간

  꽃이 피었다 진

  수척한 꽃대도

  지는 해를 바라보던 나도

  한순간 바람에

  귀를 비우고 우두커니 서 있다
 

 

[쉼표] 시(詩)의 첫 번째 목적은 자신을 위로하는 일이다.

시는 대체로 아주 짧은 순간 자신이 경험한 것을 쓰는 장르다.

물론 사실적 표현과 이면의 호기심 혹은 경험에 대한 상상력 등이 시인에 의해 다르게 표현된다.

그러나 자신의 시가 자신을 위로하지 못한다면 독자를 어떻게 위로 할 것인가.

배교윤 시인의 시 ‘일몰에 기대다를’읽으면서 시인 자신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쓴 시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시는 결국 나로부터 시작해 곁으로 번져간다.

내가 나를 위로하기 위해 쓴 시에 위로 받을 때 비로소 독자도 그 시에 공감하게 된다.

나도 알 수 없는 시는 독자도 알 수 없는 시다. 문학은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가기 힘들다.

독자라고 불리는 마니아들에 의해 지탱될 것이 자명하다.

그러므로 더욱 더 그들과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쓰는 것이 관건이다.

‘일몰에 기대다’는 여백이 많은 시지만 먹먹함이 잘 전달되는 시다.

어쩌면 여러분도 문장이 아니라 마음으로 몇 번 쯤 격어 보았을 법한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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