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茶 그리고 향기] 대설 / 안도현(19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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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와 茶 그리고 향기] 대설 / 안도현(1961~ )
  • 김명기 시인
  • 승인 2024.02.27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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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 / 안도현(1961~ )

 

상사화 구근을 몇 얻어다가 담 밑에 묻고 난 다음날,

눈이 내린다


그리하여 내 두근거림은 더 커졌다


꽃대가 뿌리 속에 숨어서 쌔근쌔근 숨쉬는 소리

방 안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누웠어도 들린다


너를 생각하면서부터

나는 뜨거워졌다


몸살 앓는 머리맡에 눈은

겹겹으로, 내려, 쌓인다
 

[쉼표] 대설(大雪)이 한참 지났습니다. 입춘도 우수도 지났습니다.

목련나무에 봉우리가 맺히고 벚나무 가지들이 말갛게 꽃피울 준비를 합니다.

울진은 영동의 끝자락입니다. 그렇게 봄을 향해 가던 시간이 잠시 멈추었습니다. 정말 대설이 내렸습니다. 재작년 봄, 큰 불길에 휩싸여 검게 변한 산맥들도 모두 하얗게 변했습니다. 이 눈은 봄눈이라 불러야겠지요.

안도현 시인은 상사화 뿌리를 심은 다음날 눈을 맞았습니다. 그때부터 꽃 볼 생각을 합니다. 상사화는 꽃과 잎이 함께 피지 않습니다. 잎이 필 땐 꽃이 없고 꽃은 잎 없는 꽃대에 핍니다. 그렇게 서로를 그리워하는 꽃입니다.

누옥의 마당에도 상사화가 몇 뿌리 있습니다. 큰 눈 밑에서 꽃대를 밀어 올리는 중이겠지요. 저도 이 눈이 다 녹을 때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군가를 생각하며 뿌리의 숨소리를 들어야겠습니다.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누군가는 폭설이라고 말하겠지만 저는 큰 눈이란 말이 더 좋습니다. 며칠 눈에 갇혀 곧 필 홍매화를 기다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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