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茶 그리고 향기] 어두워진다는 것 / 나희덕(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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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와 茶 그리고 향기] 어두워진다는 것 / 나희덕(1966~)
  • 김명기 시인
  • 승인 2024.02.05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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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진다는 것 / 나희덕(1966~)

5시 44분의 방이

5시 45분의 방에게

누워있는 나를 넘겨주는 것

슬픈 집 한 채를 들여다보듯

몸을 비추던 햇살이

불현듯 그 온기를 거두어가는 것

멀리서 수원은사시나무 한 그루가 쓰러지고

나무 껍질이 시들기 시작하는 것

시든 손등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되는 것

5시 45분에서 기억이 멈추어 있고

어둠은 더 깊어지지 않고

아무도 쓰러진 나무를 거두어 가지 않는 것
 

그토록 오래 서 있었던 뼈와 살

비로소 아프기 시작하고

가만, 가만, 가만히

금이 간 갈비뼈를 혼자 쓰다듬는 저녁

[쉼표] 시간이 지나도 공감이 가는 시들이 있습니다. 나희덕 시인의 시가 그렇습니다. 최근 나희덕 시인의 시는 사회적 약자와 인류세의 문제로 확장된 듯 보입니다. 물론 시인은 언제나 아픈 사람과 바닥을 보이는 세상을 향해 눈을 맞추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시는 2001년에 발간된 시집 『어두워진다는 것』의 표제시입니다. 이십년 전의 시이지만 누구나 한 번쯤 아파본 기억을 되짚어 줍니다. 이 시는 ‘5시 44분의 방과 5시 45분의 방’이라는 아주 짧은 시간을 서술하고 있지만 시 속의 어둠은 아주 오랫동안 아팠던 사람의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꼭 사람만의 이야기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의 어둠도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어디엔가 아무도 거두지 않는 아픈 사람이 있을 것이고 삶의 온기를 잃어버린 곳도 있을 겁니다. 최근에 벌어지는 야만적인 전쟁도 어두워진 세상의 일부입니다.

해가 바뀐지 벌써 한달이 지났습니다. 주변에 어둔운 곳이 없는지 살펴보아야겠습니다. 어떻게든 함께 살아야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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