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朔) - 시절인연 / 휘민(1974~)
유리잔 속에 담긴
수많은 탄식과 비명
어떤 목소리는
깨진 유리잔의 공명이 되고
어떤 목소리는
유리잔이 깨지는 순간 움츠러드는
고통의 맥놀이로 마음에 새겨진다
내일을 먼저 보고 온 자의
불안일까
어제를 잊으려는 자의
고투일까
아홉 번의 겨울을 함께 살고도
데면데면하던 우리는
제 가슴을 치며 실컷 울고 나서야
서로를 바라볼 수 있었다
지켜보는 달빛이 없어
울기 좋은 밤이다
[쉼표] 삭(朔)은 여느 한자들처럼 여러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휘민 시인이 말하는 삭은 마지막 연에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삭의 전날은 음력 그믐이고 태양과 지구 사이에 달이 놓인 상태를 말합니다.
가려서 보이지 않는 상태, 인간의 삶도 대체로 그런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을 시인은 불안과 고투라고 썼습니다.
우리의 일상을 들여다봐도 이 두 단어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어떤 목소리는 공명이 되고 어떤 목소리는 움츠러드는 세상에서 가슴을 치며 실컷 울 수 있는 순간조차 놓치고 사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슬픔은 나만의 것이 아닙니다. 함께 슬퍼야 할 일이 너무나 많은 세상입니다. 가려져서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극단적 증오를 서로 살피지 않는다면 기어이 파탄에 이르지 않겠습니까.
당신의 불안과 나의 고투에 대해 서로 이해하는 날이 오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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