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茶 그리고 향기] 공원에서 / 이호석(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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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와 茶 그리고 향기] 공원에서 / 이호석(1976~)
  • 김명기 시인
  • 승인 2023.09.17 1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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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 / 이호석(1976~)

누군가의 생일날에 모인 가족들은

무슨 말을 할까 차라리

가까운 곳으로 소풍이나 떠날까

공원 잔디밭에서

아이들과 축구공은 함께 몰려다니고

스티로폼 비행기가 혼자서 날아다닌다

돗자리 위에 주섬주섬 모인 어른들은

침묵하기 위해 계속 먹거나 졸았다

조루주 쇠라, 〈그랑자트 섬의 오후〉, 1884~86년경, 캔버스에 유채, 207.6×308cm , 미국 시카고 미술원
조루주 쇠라, 〈그랑자트 섬의 오후〉, 1884~86년경, 캔버스에 유채, 207.6×308cm , 미국 시카고 미술원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아이들이 비눗방울을 불자

공원은 순식간에 어항이 되어 버리고

바닥에 가라앉아 수면을 올려본다

나뭇잎에 일렁이는 햇빛의 산란

흰 구름이 하늘을 가로지른다

지난여름에 쥐어짠 더위가

빗방울처럼 후드득 떨어진다

그제야 누군가가

옷을 벗으며 주섬주섬 말을 부려 놓는다

인디언 서머 같네요

여름은 다 지나갔는데

얼음은 남았고

[쉼표]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비로소 여름이 끝난 것 같습니다. 오늘은 아직 신인인 이호석 시인의 시 한 편을 소개합니다. 이호석 시인은 얼마 전 『여름에게 부친 여름』이라는 첫 시집을 발간했습니다.

이 시는 어떤날의 상황에 관한 시입니다. 시의 묘사가 어떻게 이미지가 되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묘사가 좋다고 좋은 시는 아닙니다. 묘사가 좋아도 의미가 드러나지 않거나 이미지 구축에 실패하면 좋은 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호석 시인은 이 상황을 더욱 명징하게 보여주기 위해 조르주 쇠라의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이라는 그림을 문장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작가와 제목이 낯설 수 있겠지만 그림을 보는 순간 한 번쯤 본 적이 있는 그림입니다. 그렇습니다. 지루할 수 있는 시도 이렇게 어떤 한 문장이 불쑥 들어올 때 생기가 납니다.

오늘은 묘사가 어떻게 시가 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다만 너무 잘 정돈된 문장이 자칫 긴장감을 떨어뜨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환절기입니다. 가을의 문턱에서 건강에 유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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