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茶 그리고 향기] 예감 / 김사이(19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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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와 茶 그리고 향기] 예감 / 김사이(1971~) ​​​​​​​
  • 김명기 시인
  • 승인 2023.08.07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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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 / 김사이(1971~)
 

낮술에 취한 남자씨들이 비틀거린다

인도를 장악하고 갈지자로 걸어온다

느닷없이 달려드는 일상의 예감들

차도로 내려설까 뛸까 망설이다가

눈이 부딪쳤다

그들과 교차하는 순간

풀린 눈으로 피식거리며 팔을 쭉 뻗는다

가슴을 팍 치고 간다

화가 나서 가방으로 내려치려니

키득거리면서 술집으로 들어간다

허공에 머물다 툭 떨어지는 가방

한참을 그 자리에서 부들부들 떨었다

쫓아가서 싸울 용기까지는 내지 못한다

두려움은 내 몫이다

뒤통수로 그들의 웃음을 읽으며 주저앉았다

몇날 며칠 끙끙거리며 나를 달랜다

명백한 고의였으나 술에 취했으니

너그럽게 잊어주는 것도 내 몫이다

아무 이유가 없는 상식적인 날이다

[쉼표] 김사이 시인의 시는 좋다. 거칠고 눅눅하고 축축하지만 거기에는 김사이 만의 집요한 관점이 있다. 끈질김도 시 쓰기의 좋은 덕목이다. 김사이는 내가 아는 어떤 시인 보다도 끈질기다. 적어도 시에 관한 한 그렇다. 비켜가거나 은유하는 법을 모른다. 김사이는 맹렬하다. 적어도 시에 관한 한 그렇다.

숨통이 끊어지지 않는 한 인간은 어떻게든 삶을 유지해야 한다. 인간을 향해 인간적인 것도 인간의 모습이고 인간을 향해 비인간적인 것도 인간의 모습이다. 약자가 다른 약자에겐 강자가 되기도 한다.

이 시의 낮술에 취한 남자씨들 또한 사회적 약자일 것이다. 그런 이들이 자기보다 더 약자를 괴롭히는 일은 다반사다. 아내에게 자식에게 또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많은 부분이 사회적 약자들의 폭력이다.

김사이는 그런 점에서 시대의 기록을 게을리하지 않는 시인 중 하나다.

며칠째 폭염이다. 폭염 속에서 맹렬한 김사이의 시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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