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茶 그리고 향기] 담쟁이 / 오성인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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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와 茶 그리고 향기] 담쟁이 / 오성인 (1987~)
  • 김명기 시인
  • 승인 2023.07.2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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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 / 오성인 (1987~)

진실을 은폐할 때 문은 벽이 된다

벽이 된 문에 목소리들이 붙는다

저 몸짓,

불순한 행위로 치부한 것은 누구인가

라면보다 부실한 장비에 의지한 채

생과 사를 넘나들 때 다른 한편에선

손가락 하나 놀리지 않고 목숨

부지하기 급급하던 당신들

병든 나무의 신음과 벌어진 상처는

욕된 세계의 끝을 알리는 징조일까

자식의 유일한 유품으로 남은

포장도 뜯지 않은 컵라면에서

누을 떼지 못하는 엄마와 뉴욕에서

인천까지 열네 시간 동안 견과류

알레르기보다 지독한 모욕을 견뎠을

한 집안의 가장, 영문도 모르고

혐오의 대상이 되었던 젊은 넋

어떤 절망이나 죽음도

실패가 될 수 없다

기꺼이 온몸 희생할 줄 아는 담장은

인간적인데 자꾸만 무엇을 덮으려는

벽은 냉담하다

언젠가는 무너지고야 말 세계

혹은 敵, 영원히 견고하지 않을

낡은 옷에 마음들이 붙는다

[쉼표] 오성인의 시는 담과 벽 그리고 어둠과 죽음에 닿아있다. 하지만 그의 시가 침울이나 암울에 빠져있다는 말이 아니다. 유년과 현재를 오가는 오성인의 시적 환기는 결국 미래의 어느 지점을 향하고 있다. 이를테면 그는 자신보다 늦게 태어나 먼저 버려지는 바지를 믿는다. 단 한 번, 끝을 향해 가는 인생의 긴 시간 동안 중심을 잃고 곤두박질 치기도하고, 메워지지 않는 구멍 난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안다.
시는 표피의 미세한 감각과도 같아서 상처를 상처로 남겨두는 법이 없다. 스스로 치유하는 법을 안다. 그러므로 오성인 시인은 뿌리보다 깊고 질긴 절망 속으로 자신의 심장을 밀어 넣기도 한다. 심장은 시인이 겪었던(겪고 있는) 어둠과 죽음을 살려내기 위한 슬픈 울음이기도 하고 통증을 견디는 안간힘이기도 하다.
오성인 시인은 자신이 통과한 어둠의 옵스큐라를 통해 시라는 명징함을 드러냄으로써 인간의 보편적 동질성을 회복하려고 한다. 그의 시가 개인의 불행과 불운을 넘어 피폐한 도시와 사람에게로 확장되는 것도 울분과 슬픔을 나누어 가지려는 인간애의 본령이기 때문이다.
시는 상처이기도 하고 흉터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를 쓰는 행위는 새살이 돋는 시간이라는 것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세상의소리와 몸짓들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먼지 같은 슬픔까지도 기꺼이 끌어 안는 시인으로 살아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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