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茶 그리고 향기] 소주는 달다 / 김사인(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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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와 茶 그리고 향기] 소주는 달다 / 김사인(1956~)
  • 김명기 시인
  • 승인 2023.07.07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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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는 달다 / 김사인(1956~)

바다 오후 두시

쪽빛도 연한

추봉섬 봉암바다

아무도 없다

개들은 늙어

그늘로만 비칠거리고

오월 된볕에 몽돌이 익는다

진빵처럼 잘 익어 먹음직하지

팥소라도 듬뿍 들었을 듯하지

천리향 치자 냄새

기절할 것 같네

나는 슬퍼서

저녁 안개 일고

바다는 낯 붉히고

나는 떨리는 흰 손으로

그대에게 닿았던가

닿을 수 없는 옛 생각

돌아앉아 나는 소주를 핥네

바람 산산해지는데

잔물은 찰박거리는데

어쩌면 좋은가

이렇게 마주 앉아

대체 어쩌면 좋은가

살은 이렇게 달고

소주도 이렇게 다디단

저무는 바다

[쉼표] 시의 서정을 말할 때 시어가 얼마나 감각적인가를 이야기합니다.

김사인의 시는 문장으로만 보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와 문장을 선택합니다. 소주는 어떤 날은 쓰고 어떤 날은 단맛이 나는 술입니다. 이 시는 마지막 연의 다디단 소주를 이야기하기 위해 많은 감각을 이야기합니다.

늙은 개와 천리향 치자 냄새와 낯 붉히는 석양까지 그리고 그대에게 닿았을 손을 생각하며 소주를 핥는다고 썼습니다. ‘핥는다’라는 말은 대체로 단맛에 붙여 쓰는 타동사입니다. 시인은 이미 소주를 핥는다는 말로 소주의 맛을 미리 표현했습니다. 마지막 연과 중복되는 것을 막기 위한 시적 장치이겠지요. 그러니까 미리 마지막에 쓰일 다디단 소주를 생각하며 감각적인 문장을 끌어들여 핥는다라는 말을 쓴 것입니다.

이처럼 시는 처음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일필휘지로 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끝낼 것인가를 미리 생각하고 써내려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마신 소주의 맛은 단맛인가요 쓴맛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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