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 홍일표(1958~)
안팎이 같은 눈사람의 언어를 물고 가는
흰 새가 있어
머물지 못하고 떠도는 바람의 깃털이라고 했니?
눈사람의 말을 몰래 가져가는 너는
빛 속에서 지워지는 말이라고 했지
잠시 빛을 잡고 반짝이던 사람들
눈사람을 추억하는 그들은 알지
눈사람처럼 걷지도 뛰지도 못하는
불구의 언어를
어디에도 가닿지 못하고
흩날리다 녹아 사라지는 처음부터 없던 문자를
[쉼표] 시는 어떤 관점으로 사물과 사건을 바라보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홍일표 시인의 시는 낯설지 않지만, 서정시라고 말하기에는 이질감이 있다. 그것은 현상을 관찰하는 방식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눈사람의 말은 빛 속에서’ 지워지거나 빛을 잡고 반짝이는 사람이라는 설정은 시를 언어와 문장으로서 중요하게 여긴다는 생각이다. “눈사람처럼 걷지도 뛰지도 못하는/불구의 언어”가 시가 될 수 있는 것도 현상을 바라보는 오랜 사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한없이 가벼운 시를 서정시라 칭하는 세상에서 보란 듯 좋은 서정시 한 편을 읽을 때면 부럽기 그지없다. 문장은 아름답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시인의 시선을 가만히 들여다 본다. 어디론가 갈 수 없는 눈사람을 본다.
저작권자 © 울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