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茶 그리고 향기] 황지黃池 / 김명기
상태바
[詩와 茶 그리고 향기] 황지黃池 / 김명기
  • 김명기 시인
  • 승인 2023.05.30 20: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지黃池 / 김명기

우리는 죽음을 너무 일찍 알았다. 겨우 일곱 살에서 열네 살 사이, 죽음은 너무 또렷한 절망이었다. 산 중턱을 깎아 만든 학교는 멀리 아버지들이 밥을 버는 탄광 입구가 보이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가 들릴 때면, 학교는 숨죽인 듯 정적에 빠져들었다. 그 소리는 우리들 중 누군가는 며칠 학교를 나올 수 없다는 신호였다.

대체로 새벽 출근 조인 갑반 아버지들이 일하는 시간이었다. 등굣길에 아버지 얼굴을 못 보고 나온 아이들은 눈물을 흘리거나, 낯빛이 파랗게 질렸다. 형제나 오누이가 많을수록 동요는 더욱 심했다. 수업을 멈추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이 있었고, 광산촌 사택은 이내 소란스러웠다. 집에서 쉬던 아버지들도 너나없이 갱도 붕괴의 현장으로 모여들었다.

며칠씩 구조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아버지가 사고를 당한 아이들은 엄마를 붙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그렇게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아버지들은 고작 서른 후반이거나 마흔 초반의 사내들이었다. 사택 공터에서 상여를 만들며 아직 살아있는 아버지들은 술에 취해 울었다. 그것은 불식 간에 찾아올 자신들의 운명을 미리 보는 일이기도 했다. 죽음을 너무 일찍 안 탓인지 우리는 모든 게 빨랐다. 십 대 중후반이면 술과 담배를 배웠다.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사람을 버린 집은 선채로 노숙 중이었고

부러진 소반과 식은지 오래된 밥그릇의 곡절은 알 수 없었다

허물어진 것은 허물어진 대로 버려진 것은 버려진 대로

망각과 기억 사이를 떠돌았다 그을린 담벼락에 기댄 채

삭아버린 리어카도 한때는 누군가의 삶을 부지런히 날랐을 테고

닳아빠진 빗자루와 깨진 삽자루도 어느 갈피에서는

마른 땅바닥 위에 힘깨나 쓰던 청춘이었을 텐데

-졸시<황지 부분>

거친 곳에서의 생존은 우리를 더욱 거칠게 만들었다. 말보다 앞선 주먹질과 숱한 악다구니가 다반사였다. 그래야만 살아있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 때 내 친구 종태는 봄에 아버지를 가을에는 큰 형을 같은 탄광에서 잃었다. 그는 봄에는 울었지만 가을에는 울지 않았다. 그해 늦가을, 교실에서 담배를 피워 문 종태가 갑자기 거울을 향해 가방을 힘껏 던졌다. 거울은 마치 종태가 입은 내상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교련복을 입은 채 담배를 물고 교문을 나서던 종태를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다시는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십 년 만에 태백역 앞에서 우연히 종태를 만난 적이 있다. 이른 시간 포장마차에서 그는 안주 대신 물오이를 씹으며 술을 마셨다. 몇 잔 거푸 마시더니, 이것도 유전인가봐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광부가 되어있었다. 어린 아들이 애비를 사끼야마라(선산부)고 부른다고 했다. 어릴 때 우리랑 똑같다며 담배를 피워 물던 종태, 이십 년이 지났는데 삶은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그 후 나는 종태를 만난 적도 소식을 들은 적도 없다.

이제 나는 상여를 꾸미며 술에 취해 울던 아버지들 보다가도 훨씬 더 나이를 먹었다. 그러나 아직도 사이렌 소리에 놀란다. 그 소리는 마치 누군가 죽어가는 신음소리 같다. 어떤 말이나 소리는 이제 그만 잊어도 될 것 같은데 딱딱한 옹이처럼 박혀 지워지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어디로 흩어졌을까. 일곱 살과 열네 살 사이의 풋내 나는 슬픔을 안고 딸그락대는 양은도시락 소리를 내며 집으로 내 달리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