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茶 그리고 향기] 저녁 燈明 / 이문재(1959~)
상태바
[詩와 茶 그리고 향기] 저녁 燈明 / 이문재(1959~)
  • 김명기 시인
  • 승인 2023.03.29 14: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녁 燈明 / 이문재(1959~)

저녁 등명에 가면 불 들어 온다

7번 국도 초입, 동해 초입

낮에는 눈부셔 눈뜨지 않는 해안

없는 듯 엎드려 있는 마을, 燈明

집어등 점점이 수평선 새로 그을 즈음

마을은 한낮에 고인 빛을 모아

저마다 하나씩 등을 단다

모든 집이 연등으로 살아나

연등 속에 있는 사람들

보이지 않는 심지가 된다

어둠이 내려야 등명이 되는 등명리

땅에 다 와서 스스로 깊이를 잃는

동해도 등명 앞에서는 순해진다

마음 캄캄하던 사람들도

저녁 등명에 가면 불이 켜진다

밤바다, 집어등 사이로

새파란 길이 보인다

[쉼표] 이문재 시인의 시중 ‘燈明’이란 시도 있지만, 나는 ‘저녁 燈明’을 더 좋아한다. 등명이란 작은마을은 나도 몇 번 가본 적 있다. 지금은 강릉시에 편입된 행정구역이지만, 그 옛날 명주군 정동진과 안인 사이 등명락가사라는 천년고찰 아래 고요한 마을. 묵호지나 옥계에서 바닷길 따라 한없이 가다 보면 자칫 지나치기 쉬운 작은마을.

이문재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낮에는 눈부셔 눈뜨지 않는 해안/없는 듯 엎드려 있는 마을‘이다. 이제는 사방 큰길이 나 여기 저기서 사람들이 들고 마을 언덕 위에 펜션이며 카페도 들어섰지만, 내 기억의 등명은 먼지 폴폴 날리는 비포장도로 곁이 거나 기차 창밖 스치듯 지나가는 작은마을이었다.

어찌 되었든 ‘燈明’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등명처럼 있다. 이따금 강릉 가는 길 큰길을 버리고 부러 해안길 따라 등명고개 넘어가면서 이문재 시인의 등명이나, 저녁 등명이란 시를 생각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