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차 그리고 향기] 단단함에 대하여(전윤호 1964~)

2020-07-27     김명기

    단단함에 대하여 / 전윤호(1964~)

    가을 배추밭을 보면 안다
    중심을 향한 마음이
    겹겹이 뭉쳐진 것을
    겉잎사귀 몇 상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헐값에 넘겨져도
    포기하지 않는 의지들
    더러는 혁명을 품기도 하고
    쿠데타를 품기도 하는 저 밭은
    이제 겨울이면 버려져 눈을 맞으며
    봄에 씨 뿌릴 사람을 기다릴 것이니
    가을 배추밭을 보면 안다
    내 안의 설움은
    때를 기다리는 노란 고갱이라는 걸

[쉼표] 단단하다는 말은 쉽게 쓰이지만 쉽게 범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단단한 것도 물리적 힘을 가하면 깨지거나 녹아내린다.

물리적 힘에서 자유로운 건 인간의 의지다.

자아는 스스로 형성된 힘이며 오래 생각하고 굳어진 마음은 좀처럼 깨지지 않는다.

가을 배추밭가에서 시인은 자신 안의 설움이 때를 기다리는 고갱이라는 걸 깨달았지만, 어떻게 될지는 시인만이 아는 일이다.

시의 단단함과 의지를 생각해보면 사람은 터무니없는 짓으로 시간을 축내는 경우가 많다.

배추 고갱이는 못되고 겉저리처럼 흩어지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가.

단단함이란 오랫동안의 견딤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