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 김명인(1946~)
길은 제 길을 끌고 무심하게
언덕으로 산모퉁이로 사라져가고
나는 따라가다 쑥댓닢 나부끼는 방죽에 주저앉아
넝마져 내리는 몇 마리 철새를 본다
잘 가거라, 언덕 저켠엔
잎새를 떨군 나무들
저마다 갈쿠리 손 뻗어 하늘을 휘젓지만
낡은 해는 턱없이 기울어 서산마루에 있다
길은 제 길을 지우며 저물어도
어느 길 하나 온전히 그 끝을 알 수 없고
바라보면 저녁 햇살 한 줄기 금빛으로 반짝일 뿐
다만 수면 위엔 흔들리는 빈집일 뿐
[쉼표] 오늘은 김명인 시인의 시 한편을 소개합니다.
김명인 시인은 울진출신의 대표적 출향작가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두천에 김명인 시인의 시비(詩碑)가 있습니다.
삼십년 전 문청이었던 나를 새로운 시의 세상으로 안내했던 시인이기도 합니다.
그의 초창기 시에 해당하는‘동두천’은 시대적 어둠을 끌어안고 고뇌하는 젊은 지식인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어느덧 김명인 시인은 팔순을 바라보는 원로 시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소개하는 ‘길’이라는 시에서 보듯 그의 시선은 늘 넉넉하지 않은 것을 바라보는 듯합니다.
우리도 우리의 몸을 끌고 무심하게 앞으로 나아가지만 그 끝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끝은 결국 빈집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겠지요.
수없는 문명의 이기 속에서 사람은 늘 허기진 듯 합니다. 결국 아무것도 없는 끝을 향해 갈 뿐인데.
매미의 울음소리가 점점 힘을 잃어가는 계절입니다.
여름이면서 가을인 이 계절 모두 평안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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