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茶 그리고 香氣]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정희성(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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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와 茶 그리고 香氣]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정희성(1945~)
  • 김명기 시인
  • 승인 2021.08.30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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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정희성(1945~)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쉼표] 시는 어쩔 수 없이 현실의 정서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소설과 다른 양상을 띱니다.

소설은 오래된 이야기도 다시 불러낼 수 있지만 시는 ‘시의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먼 이야기일수록 시의성이 떨어져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간혹 시의성을 건너뛰는 시가 있습니다.

오늘 소개한 정의성 시인의 시‘저문 강에 삽을 씻고’도 그런 시중 한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시는 1978년에 발표된 시입니다. 그러니까 인권보다는 개발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이야기입니다.

그러나 44년 전의 현실과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여전히 인권의 사각지대는 줄어들지 않는 것 같습니다.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노동의 대가와 사람의 목숨을 바꾸는 일이 드물지 않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시를 쓰고 읽는 이유는 시를 통해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늦장마 속으로 여름이 끝나고 있습니다.

여름의 끝에서 시를 읽으며 어둡지만 다시 들여다봐야 할 사람들은 없나 돌아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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