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 육근상(1960~)
너무 어릴 적 배운 가난이라서
지금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이제는 더 늙을 것도 없이
뼈만 남은 빈털뱅이 아버지가
어디서 그렇게 많이 드셨는지
붉게 물든 옷자락 흩날리며
내 옆자리 슬그머니 오시어
두 손 그러쥐고 우십니다
산등성이 내려온 풀여치로 우십니다
[쉼표] 여름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습니다.
더위를 식혀줄 소나기 한줄기가 간절하기도 합니다.
사람이 제각각 다른 품성을 가지고 있듯 시인들의 시도 제각각 상황을 묘사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육근상 시인의 시 ‘가을비’에는 비란 단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대신 붉게 물든 아버지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물론 이 아버지조차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영혼입니다.
가을비내리는 어느 날 시인의 손 가까운 곳에서 우는 풀여치를 육근상시인은 아버지로 치환시키며 비라는 현상을 상징으로 바꾸어버립니다.
시란 것은 굳이 제목에 연연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연관이나 인과관계가 있다면 좋겠지만 어떤 상징이어도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여름을 지나면 다시 가을이 오겠지요.
여러분은 가을비 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그게 무엇이든 사람냄새가 물씬 나는 것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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