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茶 그리고 香氣] 사라지는 시간들 / 김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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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와 茶 그리고 香氣] 사라지는 시간들 / 김주태
  • 김명기 시인
  • 승인 2021.07.19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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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시간들 / 김주태
 

봄보다 가을이 고운 가시리골

홀로 걷는 들길

복숭아 때깔이 작년보다 더 고우냐고

겨울에 저세상 간 박 씨에게 묻고 싶고

보름 전 요양원에 간 이 씨에게

감자 잘 여물고 있느냐 물어보고 싶다

가물어도 다들 시퍼렇게 버티고 있는데

모두 떠나고

사라지고

굽어지고

보이지 않네

오솔길은 없어졌는데

신작로만 시커멓게 넓어지고 있네
 

[쉼표] 살면서 성급했다 싶을 때가 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첫 시집을 일찍 낸 일이다.

운이 좋아서 일찍 나온 것 일수도 있지만, 다시 읽어보면 치기가 넘친다.

등단 15년 만에 나온 김주태 시인의 시들은 어설픔이 없다. 치기도 없다.

대신 근대문명에 의해 사라져가는 존재들에 대한 곡진한 서정이 담겨 있다.

무엇에 대한 불만과 결의가 보이는 시집은 오래 기억되지 않을뿐더러, 잘 읽히지도 않는다.
그런 면에서 김주태 시인의 늦은 첫 시집은 시에 대해 막연한 어려움을 상쇄시킨다.

어디를 펼쳐 읽어도 시 속의 풍경이 바로 떠오른다.

시나 문학이 역사와 다른 또 하나의 시대적 기록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사라지고 잊어버리는 것들의 배경에는 거대한 자본주의가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담백한 서정적 문장으로 써내려간 시들이다.

가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의 생명이 얼마나 남았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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