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구온천 원탕에서 300년전 울진현령 오적(吳勣) 마애비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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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구온천 원탕에서 300년전 울진현령 오적(吳勣) 마애비 발견
  • 전석우
  • 승인 2021.04.14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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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청에 근무하는 장기영 울진향토사연구회 사무국장이 발견
- 300년 전 울진현령 오적(吳勣), 중풍 치료위해 덕구온천에서 ‘온천욕’
마애비 근경(사진 = 심현용 울진군청 학예연구사 제공)
마애비 근경

오늘날처럼 다양한 치료방법이 없었던 전근대 사회에는 침과 한약 외에는 온천욕에 큰 기대를 걸었으며 실제 효험을 보았다는 기록도 많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는 각종 질환으로 고생하던 여러 임금이 온천욕을 통해 증상호전과 치료효과를 얻었다는 기록이 자주 등장한다.

최근 18세기 초 강원도 울진현령을 지낸 오적(吳勣)의 마애비가 북면 덕구온천 원탕 부근에서 발견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마애비(磨崖碑)에는 울진현령 오적이 丙申年(1716년), 병(중풍)을 치료하기 위해 온천을 다녀간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사진 = 심현용 울진군청 학예연구사 제공)
오적 마애비를 발견한 장기영 울진향토사연구회 사무국장과 아들 진호

오적 마애비는 2019년 4월 13일, 군청에 근무하는 장기영 울진향토사연구회 사무국장이 아들 진호와 등산하러 갔다가 덕구온천 원탕 부근에서 발견해 알려지게 되었다.

산신각과 암벽 전경
산신각과 암벽 전경

마애비는 울진군 북면 덕구2리 산 1-1번지에 위치한다. 이곳에는 온천수가 용출하는 덕구온천 원탕(해발 275m)이 있는 곳으로 응봉산(해발 998.5m) 정상으로 올라가는 루트인 덕구계곡에 포함된다.덕구온천 원탕 남쪽에는 산신각이 있으며, 산신각 뒤에는 큰 암벽이 수직으로 편평하며 남쪽에서 북쪽을 향하고 있다. 오적 마애비는 이 암벽의 왼쪽으로 치우쳐 새겨져 있다.

이와 관련 심현용․장기영․정민호는 공동으로 『영남학』제76호(2021.03)에 ‘18세기 초 강원도 울진현령 오적의 마애비와 덕구온천’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심현용 울진군청 학예연구사 “1716년의 울진현령 오적 마애비는 울진 덕구온천의 유구한 역사를 증명하는 귀중한 사료로 그동안의 문헌기록을 입증해주는 중요한 금석문이라 하겠다”고 말했다.

현령 오적 마애비(磨崖碑)

■ 울진현령 오적 마애비의 내용과 명문과 번역

‘18세기 초 강원도 울진현령 오적의 마애비와 덕구온천’에 따르면, 마애비는 테두리만 굵게 선각하였는데, 전체적인 형태는 ∩모양이다.

비의 너비는 58㎝, 왼쪽 측면 비신 테두리의 길이는 95㎝, 오른쪽 측면 비신 테두리의 길이는 80㎝이다. 또 현 지표에서 마애비의 최상부 높이는 210㎝이며, 하부 높이는 왼쪽 115㎝, 오른쪽 130㎝이다.

명문은 마애비 내부와 외부로 나뉘어 음각되어있다. 마애비 안에는 세로 8줄의 명문이 있다. 1행은 비제(碑題)를 크게 적었으며, 나머지는 작게 적었는데 2∼7행은 내용이며, 8행은 새긴 시기와 서자(書者)를 기록하였다.

명문은 마애비 내부 90자(8행), 외부 5자(2행)로 모두 95자다. 글자 수는 1행 9자, 2행 12자, 3행 12자, 4행 12자, 5행 12자, 6행 8자, 7행 8자, 8행 17자로 모두 90자이다. 그리고 마애비 밖에는 명문을 왼쪽에 협서(脇書)하였는데, 모두 2행이다. 1행은 4자를 세로로 새겼는데, 마지막 4번째 글자에서 가로로 우서(右書)하여 1자를 연결하여 적어 2행을 이뤘다.

서체는 해서체이고 글자의 크기는 큰 것은 가로 18 × 세로 17㎝ 정도이다. 마애비의 명문과 번역은 다음과 같다.

덕구온천 원탕 전경

縣令吳勣 療病來沐浴 현령 오적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목욕하러 오다

嵩高維岳 높고 높은 험한 산에

毓靈貯精 영험한 정기 모여

瀉出玉流 옥 같은 물 솟아나니

利澤流行 이로움이 넘쳐나네

今吾一疾 지금 나의 한 가지 병

靡神可祈 치료할 길 없었지만

來治湧泉 용천수로 다스리면

曷不祛痱 떨쳐낼 수 없겠는가

數間樓屋 두어 칸 다락집은

宜隱者居 은자가 살만한 곳

有風難遠 중풍 있어 어렵사리

△△登岨 … 험한 산 올라왔네

前後淸澗 앞뒤로는 맑은 계곡

左右石扉 좌우로는 돌문[石門]인데

序屬令節 좋은 계절 만났으니

浴乎詠歸 목욕하고 돌아가네

歲在赤猴 八月下澣 △△通德郞權垕奉書

병신년 8월 하순에 … 통덕랑 권후가 받들어 쓰다. 【이상 마애비 내부】

趙汝用 同沐

조여용이 함께 목욕하다. 【이상 마애비 외부】

※장기영과 심현용의 1차 판독을 거쳐 안동민속박물관 정민호 학예연구팀장이 최종 판독과 번역을 완성하였다.

현령오적 및 조여용 글자 세부
현령 오적, 조여용 글자 세부

이 명문은 1연에는 온천수에 대한 소문, 2연 병 치료에 대한 기대, 3연 온천을 위해 가는 과정, 4연 목욕 후의 만족감을 표현하였는데, 원탕에 온 목적과 감흥, 비문을 찬한 사람, 병명, 원탕의 풍경, 같이 온천욕한 사람, 명문을 새긴 시기 등이 보인다.

명문의 주인공인 현령 오적은 『울진군읍지(1899)』와 『울진군지(1938)』에 1715년(숙종 41) 9월∼1716년(숙종 42) 12월까지 울진현령을 지냈으며, 옥구(지금 전북 군산시) 출신으로 확인되어 각석문의 정보가 사실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관동지』(1829∼1831), 『관동읍지』(1871), 『강원도지』(1941) 등에서도 울진현령을 지낸 사실이 확인된다.

심현용 학예연구사는 결론적으로 “마애비에 쓰인 ‘병신년’은 오적의 울진현령 재임기간 중 병신년(1716)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며, “즉 이 명문은 오적이 울진현령을 지내는 중 1716년 8월 21∼30일 사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조여용과 함께 덕구온천 원탕에 등산하여 온천욕한 후 이를 기념하여 바위에 기록을 남겼던 것으로 일종의 ‘온탕비(溫湯碑)’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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