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茶 그리고 香氣] 악기 / 홍일표(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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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와 茶 그리고 香氣] 악기 / 홍일표(1958~)
  • 김명기 시인
  • 승인 2021.03.01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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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 / 홍일표(1958~)

나는 노래를 가지러 왔다 빈 그릇에 담긴 것은 다 식은 아침이거나 곰팡이 핀 제삿밥이었다 콜로세움의 노인도 피렌체의 돌계단 아래 핀 히아신스도 다시 보지 못할 것이다 다시 보지 못한다는 것은 유적의 차가운 발등에 남은 손자국만큼 허허로운 일이나 한 번의 키스는 신화로 남아 몇 개의 문장으로 태어났다 불꽃의 서사는 오래가지 않아서 가파른 언덕을 삼킨 저녁의 등이 불룩하게 솟아올랐다 나는 노래를 가지러 왔다 지상의 꽃들은 숨 쉬지 않았다 눈길을 주고받는 사이 골목은 저물고 나는 입 밖의 모든 입을 봉인하였다 여섯시는 자라지 않고 서쪽은 발굴되지 않았다 삽 끝에 부딪는 햇살들이 비명처럼 날카로워졌다 흙과 돌 틈에서 뼈 같은 울음이 비어져 나왔다 오래전 죽은 악기였다 음악을 놓친 울림통 안에서 검은 밤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다만 노래를 가지러 왔다

 [쉼표] 시는 음악과 아주 가까운 예술이다. 시의 확장성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음악이다.

  시와 음악은 서로 영향을 준다. 음악이 시가 되기도 하고 시가 음악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아주 오래된 관계다. 신화 속에서도 시와 음악은 자주 나온다.

  “나는 노래를 가지러 왔다”로 시작 되는 첫 문장은 시와 음악의 경계가 모호함을 나타낸다. ‘악기’라는 홍일표 시인의 시 한편은 잘 연주된 한 곡의 음악과도 닮아 있다.

  현대시가 점점 음악성과 거리가 멀어진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그것 역시 현대시의 운명이다. 모든 예술은 원천으로부터의 파생이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파생을 좀 더 좋은 말로 바꾸면 진화가 된다.

  그러나 원천이 지니고 있는 유전자는 모든 예술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현대시의 진화가 음악으로부터 멀어졌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다.

  아직도 ‘악기’와 같은 시는 원천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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