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 박남준(1957~)
그 눈길을 걸어 아주 떠나간 사람이 있었다
눈 녹은 발자국마다 마른 풀잎들 머리 풀고 쓰러져
한쪽으로만 오직 한편으로만 젖어 가던 날이 있었다
[쉼표] 오늘 소개하는 박남준 시인의 <눈길>은 아주 짧은 시다.
오늘날의 현대시는 시의 함축성과는 거리가 멀다.
함축적 이미지로 시를 구성하거나 표현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복잡한 관계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끔 아주 짧은 시 한편이 빛날 때가 있다.
이것은 시의 본연이라 말해도 좋겠다.
이 시는 전체적 이미지를 간소화시킨 추상적 작품이다.
3행의 시 모두를 읽어도 시의 전후를 짐작 할 수 없다.
다만 1행과 3행은 시간적으로 간극이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1행의 아주 떠났다는 것이 죽음의 의미인지 아니면 이별의 의미인지 알 수는 없다.
2행은 떠난 사람을 뒤쫓아 가는 시간이고
3행은 흘러간 시간이 남긴 감정의 축적이다.
전후를 알 수 없지만 축축한 슬픔은 그대로 전달된다.
입춘(立春)이 지나고 이대로 봄이 올 것 같은 따뜻한 날들이 지나가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라스가 삶을 지체시키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래도 어디선가 꽃이 움트고 있을 것이다.
마른 풀잎들이 다시 살아나는 시간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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