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출신, 이창호씨 ‘2020년 시인광장 신인상 공모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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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출신, 이창호씨 ‘2020년 시인광장 신인상 공모 당선’
  • 김지훈
  • 승인 2020.12.11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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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평(選評) “감각의 구체와 활력있는 자기 개진(開陳)의 밀도를 드러내 보여준 미학적 결실”
- “미세한 언어적 표현에 집중, 일상적 언어로 인간의 근원적 본성에 치열한 시적 표현하고자”

지역출신 이창호씨(1963년 울진읍 출생, 필명 이하 李下)가 시전문 웹진 시인광장의 2020년 제10회 신인상 공모에 당선됐다. 당선 작은 ‘말의 뼈’외 4편으로, 그는 2018년 수원문학(45, 가을호) 신인상을 수상한 바도 있다.

이창호씨는 “서정에 바탕을 둔 서사적 산문시를 주로 쓰고 있으며, 현실과 사회의 문제들, 삶과 죽음이 함께 하는 인간의 본질적 운명에 동반된 본연의 미동微動 안에서 시의 소재를 발견하고 서정적인 언어로 표현하고자 한다”며, “단순한 사실의 서술적 나열이 아니라 현상 안에 감춰진 시적 언어를 발견하는 프리즘prism과 같은 미세한 언어적 표현에 집중하려 찾아내는데 애쓰며 일상적 언어로써 인간의 근원적 본성에 더욱 치열한 시적표현으로 다가서려 공부하고자한다”고 밝혔다.

시인광장은 2006년 출발한 시전문 웹진으로써 현재까지 시인 1600여명의 작품들을 수록하며, 올해까지 열번째 신인상으로 시인을 발굴하고 시를 발간하고 있는 정평있는 시전문 문학지로 알려진다.

신인상 선평(選評)에서 유성호(한양대 교수) 문학평론가는 “여러 차례 역량 있는 신인을 세상에 내놓은 바 있는 『시인광장』은 이번에도 꽤 의미 있는 신인 배출의 지표를 남기면서 독자적인 매체적 위상을 거느릴 수 있게 되었다. 응모자들 가운데 심사위원은 시상(詩想)이 탄탄하고 이미지 조형이 탁월한 이승현, 이지향, 이하의 작품을 우선적으로 주목하였다. 그 결과 한 편 한 편의 완성도가 높고 우수한 언어적 운용 능력을 보여준 이하의 「말의 뼈」 외 4편을 당선작으로 선정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하의 작품은 전체가 균질적인 수준과 품격을 갖추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적출해내는 기막힌 서정적 솜씨를 갖추고 있었다. ‘가시 촘촘하고 심장 뛰는 문장 하나’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으로 충일한 시인이다. 그런가 하면 하나하나 발견해가면서 오랜 흐름을 관찰하는 서사적 능력도 신뢰할 만한 것이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서사와 이미지, 호흡과 울림을 우리 시단에 크게 전해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어 “결과적으로 이하의 작품은 감각의 구체와 활력있는 자기 개진(開陳)의 밀도를 드러내 보여준 미학적 결실들이었다. 가볍게 초월하지 않고 무겁게 강요하지 않는 그의 언어는 자신의 삶에 대한 섬세한 반추와 성찰에도 불구하고 경쾌하고 진지한 무게를 잃지 않게끔 하는 균형추의 역할을 해주었다. 당선작들은 하나같이 호흡이 길고 일관된 흐름을 놓치지 않는 시상의 견고한 구성을 보여주었다”며, “심사위원은 그가 삶에 대한 시선을 따뜻한 긍정과 차가운 냉소로 통합하면서, 은은하고 열정적으로 삶을 해석해가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을 신뢰할 수 있었다. 당선자에게는 상상력의 생기 있는 출렁임을 보여준 선명한 이미지의 작품들이 많았음을 부기하고자 한다. 당선을 축하하면서 더욱 개성적 필력과 경험적 구체성을 바탕으로 하여 신인다운 진경(進境)과 지속 가능성을 구현해가기를 마음 깊이 기대해마지 않는다”고 평했다.

당선 소감에서 이창호씨는 “당선 소식은 초조하게 서성거리던 일상의 내게 시린 바람처럼 전율이었다. 중심이 흔들리고 흘러드는 두려움을 견디며 지낸 날들. 그러나 짓누르는 등짐의 무게를 탓하며 늦은 오후의 햇살처럼 끊어지고 자주 비틀거렸다. 밤으로 가며 긴 꼬리를 흘리는 노을처럼 발을 내딛으려 했지만 스치는 풍경에 사로잡혀 내면의 깊고 고요한 곳에서 발화發話하지 못한 낱말의 조각들을 꿰맞추려 애쓸 뿐, 고르지 못한 들숨과 날숨의 작품들에 어지러울 뿐이었다”며, “안타까움에서 거듭 태어나길 소망했지만 내 안에서 녹아내리고 나 아닌 것에 집착했던 시편은 모래알처럼 부서지고 흩어져 먼지처럼 쌓여만 갔다. 그러나 상실을 더는 품지 않고 내 영혼에서 흐르는 나의 노래를 위해 화두를 쫓듯 다시 시를 품고자 서러운 얼굴을 지우고 상처를 스스로 보듬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뼛속까지 시린 한 계절을 걷어내며 또 다른 변화의 계절이 찾아드는 것처럼, 눈발에 지워지지 않고 부끄러움으로 참회를 덮지 않는 저의 시의 세계를 향해 무위撫慰의 길을 걷고 또 걸어가겠다. 까마득히 이어질 다음의 이야기에 묻혀가지 않고 몸을 말리는 신음을 제 스스로 들어야만 하는 시인의 길을 마다하지 않겠다. 파문이 중심에서 밀려 나가고 천천히 잠겨가는 순환의 고리를 벗어나지 않는 평온한 바다처럼 나의 꿈에 들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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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뼈 / 이하(李下)

1.

어둔 숲. 외진 길에서 눈에 반짝거리는

인광燐光을 보았다

기척 없이 바닥위에 떠있다

잠 든

뼈 하나를 얻었다

말의 퇴적으로 오랜 풍화를 견디며 단단해진,

활자의 바다 심해를 꼬리치던, 작은 뼈에는

넝쿨처럼 촘촘한 핏줄이 붉게 감싸고 있었다

무덤 자취를 털어내고

부러진 뼈대를 가만히 들여 보았다
 

뼈에 숨은, 말이 있었다


행간의 뒤를 밟던 질주의 눈에 쫓겨, 든

미로의 숲을 벗어나지 못한 말이거나

풍경의 여백을 채우던 모음이거나

어둔 하늘을 날다, 비명에 얼개가 무너져 내려앉은 것인지

잔가지에 매달려 있던 낙과의 상흔을 삼키고

고요로 기운 침묵으로, 숨 멎어가는

말의 뼈가 분명했다
 

서늘한 음각의 문양을 품은, 인장印章의 편린片鱗이나

오래 쓰다 버려진 말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지만

소란을 걷어내지 못하고

적의敵意 살아 있는, 비밀의 말 이었다
 

사구에서 사라진 바람의 결이, 뼈마디에 일렁이는 것도 보았다

거리를 떠돌던 말, 혀에 돋아있다 휩쓸린 연흔도 있었다

미라의 검은 입술에서 퇴화된 명징한 표현들,

정염 불타던 눈길의 떨림도 남아 있다
 

뼈대는 말을,

다시 이룰 수 없어 보였다
 

허기진 기억이 낙엽처럼 덮여 있고

눈 감지 못한 주검이 되고 있었다
 

2.

오래 귀담아 두었던 낱말 하나, 아둔한 머리를 지나갔다

몸 깊숙이 숨겨, 이미 사라진 말이다
 

풍장風葬에 남은 돌의 뼈대, 홍예虹蜺처럼

견고한 문체文體를 가진 말의 뼈대를…
 

가시 촘촘하고 심장 뛰는 문장하나를 갖고 싶다
 

가슴 구부러져 박히는 못. 아닌 말

죽음의 시편을 걷더라도, 거꾸로 읽을 수는 없는

그런 말. 하나를,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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