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茶 그리고 香氣] 악수 / 김희준(199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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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와 茶 그리고 香氣] 악수 / 김희준(1994~2020)
  • 김명기
  • 승인 2020.11.30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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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수 / 김희준(1994~2020)

비의 근육을 잡느라 하루를 다 썼네 손아귀를 쥘수록 속도가 빨라졌네 빗방울에 공백이 있다면 그것은 위태로운 숨일  것이네 속도의 폭력 앞에 나는 무자비했네 얻어맞은 이마가 간지러웠네 간헐적인 평화였다는 셈이지 중력을 이기는 방식은 다양하네 그럴 땐 물구나무를 서거나 뉴턴을 유턴으로 잘못 읽어보기로 하네 사과나무가 내 위에서 머리를 털고 과육이 몸을 으깨는 상상을 하네 하필 딱따구리가 땅을 두드리네 딸을 잃은 날 추령터널 입구에 수천의 새가 날아와 내핵을 팠던 때가 있었네 새의 부리는 붉었었네 바닥에 입을 넣어 울음을 보냈네 새가 물고 가버린 날이 빗소리로 저미는 시간이네 찰나의 반대는 이단(異端)일세 아삭, 절대적인 소리가 나는 방향에서 딸의 좌표가 연결되는 중이네 물구나무를 서서 세상을 들어 올리는 내가 있네 빗줄기를 잡느라 손은 손톱자국으로 환했네 물집이 터졌으나 손금에는 물도 집도 없었네 단지 여름이 실존했네

[쉼표] 유난히 긴 장마가 한창이던 칠월 중순 젊은 시인의 비보를 들었다. 새로운 감각의 서정시를 선보이던 김희준 시인이 빗길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리고 시인의 49재이자 자신의 생일인 9월 10일 첫 시집이며 유고시집이 되어버린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문학동네 2020)이 나왔다.

‘악수’라는 시는 시인의 죽음과 묘하게 맞물린다. 시는 경험의 상상이다. 대체로 자신의 경험에 상상력을 입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시는 미래의 상상이 된 듯하다. 하지만 젊은 시인의 요절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겠나.

시인이 남기고간 시를 읽다가 운명이란 말이 자꾸만 입 안에 맴돈다. 26년 중 10년 동안 시에 매달렸고, 2년 남짓 시인으로 살다간 짧은 생이 온통 젖어있는 것 같이 안타깝다. 부디 다음 생에라도 미처 못 써낸 시를 오래도록 쓸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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