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출신 최종률 박사, 미국 오번주립대학 ‘석좌교수’ 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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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출신 최종률 박사, 미국 오번주립대학 ‘석좌교수’ 임용
  • 전석우
  • 승인 2020.11.27 15: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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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이 글은 최종률 박사의 친동생인 최종은(울진읍 거주)씨가 기고한 글이다.

최종률 박사
최종률 박사

울진 읍내리 출신 최종률(66·崔鍾律) 박사가 미국 앨라배마주 오번주립대학 ‘석좌교수’로 임용됐다.

최 박사의 미국에서의 석좌교수의 임명은 울진읍이라는 소규모의 지방도시에서도 재력과 능력 없이 꿈과 노력만으로도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꾸준히 노력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의미가 깊다.

최 박사는 최근 대학 측으로부터 석좌교수의 임명 소식을 듣고 이 모든 영광을 작고하신 부모님과 고향의 친구들과 그리고 친척들께 드리고 싶다며 고향 울진에 사는 7남매 중 막내 동생인 최종은에게 전화로 전해왔다.

현재 울진읍에 살고 있는 최종은(61·崔鍾垠)은 “형은 머리도 좋았지만 노력형이다. 공부할 때는 무서운 집중력으로 공부를 했으며 한 밤중에 졸리면 의자에 다리를 묶어놓고 공부를 하곤 했다.”고 전했다. 그는 울진읍에서 ‘알비노 웹디자인’을 운영하고 있다.

▲ 오번대학교에서 석좌교수 임명식 기념사진
지난 11월 10일, 최종률 박사의 미국 오번주립대학 석좌교수 임명식이 미국 현지에서 있었다.

최종률 공학박사는 1954년 울진초등학교 옆 울진읍 읍내리 505-2번지에서 부친 고(故) 최진홍(崔珍弘)과 모친 고(故) 홍계옥(洪桂玉) 사이에 3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은 반공 청년운동과 여러 사업을 했으며, 36세 나이로 제2대 지방의회(1956년) 울진면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생전에 지방 발전을 위해 울진 초‧중‧고 육성회장과 울진군 최씨대동종친회장으로 활동했다.

외삼촌은 홍응준, 홍도준이며 이들은 울진지역에서 여러 초등학교 교장을 역임하였으며 일평생 교육계에 몸담았다.

최 박사는 울진초등학교 52회, 울진중학교 18회 졸업생으로 울진중‧고 동문이다. 교육열이 높았던 부친의 권유로 중학교 졸업 후 서울에 있는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최 박사의 성장기는, 부친이 죽변에서 운송업을 하다 실패하면서 가정살림이 넉넉한 편은 못되었다.

모친은 가사를 돕기 위해 가축을 키웠다. 특히 그 당시의 돼지 사육은 음식물 찌꺼기로 사료를 대신해 사육했으며 사료비가 많이 들지 않는 까닭에 집 마당 한쪽에 키워서 가사와 자녀 교육비에 보탬이 될 수 있었다.

최 박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제대 후 대학에 복학한 후, 다른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큰 꿈을 꾸기 시작했다.

부친 최진홍은 아들의 꿈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단지 “기술고시(기술고시는 당시 사법, 행정고시와 더불어 3대 고시로 통했다)에 합격해 기술 분야에서 한국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해보라”고 권유했다.

이후 아들의 깊은 뜻을 헤아리고는 어려서부터 무엇이든지 자기 할 일을 스스로 해온 그인 까닭에 그냥 “열심히 하라”라는 말 이외 따로 말씀을 하지 않았다.

제대 후 잠시 쉬는 틈을 이용해 고향에 내려와 공부에 몰두했다.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졸업 후 고시보다는 학자의 길로 가기로 결심하고 1981년 독일 최고의 공과대학인 베를린 공과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2010년 3월, 모교인 울진중고등학교 강당에서 후배들을 위한 ‘명사 초청 강연회’ 광경
2010년 3월, 모교인 울진중고등학교 강당에서 후배들을 위한 ‘명사 초청 강연회’ 광경

독일에서의 생활 또한 녹녹지 않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여러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했고, 언어의 장벽도 많았다. 다행히 독일로 유학 가기 전 독일문화원에서 2년 동안 집중적으로 독일어를 공부한 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던 중 독일인 지도 교수를 만나서 연구 조교수로 취업하게 되었다. 이후 연구와 강의를 병행하면서 경제적인 안정과 함께 학문적인 기초를 다지게 되었다.

최 박사가 베를린 공대에서 취득한 박사학위 논문은 <송전선로에서의 고주파의 억제를 위한 능동형 필터>이다. 주요 내용은 송전선에서 비선형 부하에 의한 고주파가 발생하는데 전력의 품질을 떨어지게 하는 이 고주파를 제거하기 위한 고출력 전자 회로의 구성된 능동형 필터의 설계 및 제어에 관한 것이었다.

독일 베를린 공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대학과 독일 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재직 중 한국의 현대자동차 그룹 연구소에서 재외 과학자 유치 프로그램의 일부로 입사 제의를 받았다.

그는 “내가 공부한 분야를 한국에서 활용해 보는 것이 애국하는 것이다”라는 신념으로 귀국의 길에 오르게 되었다. 당시 부친도 평소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도록 해라. 그리고 너는 늘 내가 말하기 전에 모든 일을 잘해왔으니 큰 갈등을 하지 말고 네가 결정한 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현대자동차에 부장으로 근무하면서 국내에서의 새로운 삶을 열었다. 현대자동차에 근무하는 직장생활은 대학에서의 연구직과는 달랐다.

제품의 품질향상에 대한 연구도 해야 했고 노사문제가 생기면 현장에 달려가 노조와 대화도 해야 하는 일이라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맡은 바 소임을 다했고 그런 와중에 연구 개발 분야에의 우수한 실적으로 이사로 승진했다.

특히 한국 최초로 작동하는 하이브리드 차량을 설계 완성을 했으며 오늘의 현대 자동차 하이브리드 시리즈에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오번대학교에서 석좌교수 임명식 기념사진(가운데)
오번대학교에서 석좌교수 임명식 기념사진(가운데)

하지만 자녀들 교육으로 인한 갈등과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의 꿈을 안고 10여 년을 일한 현대 임원직을 사표내고, 미국에서의 대학교수 생활을 위해 2002년 가족과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미국의 문화는 독일과 한국과는 또 달랐다. 능력주의인 미국의 문화는 엔지니어링 능력보다는 과학자로서 능력을 요구하였다. 이 모든 것은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이었다.

한국에서는 미국 생활이 넉넉하고 여유롭게 생각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쩌면 미국의 대도시의 생활은 한국의 여느 도시보다 더 바쁘게 돌아간다. 생존경쟁이 더 치열한 곳이다.

대학교도 같다. 교수들도 정기적으로 매년도별로 능력 평가를 치러야하고 연구비 확보 및 양질의 강의 및 우수한 논문도 정기적으로 내야하며 이 모든 일정들을 소화하기에 정말 바쁜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미국 오번(Auburn  University) 주립대학교 전경
미국 오번(Auburn University) 주립대학교 전경

2002년부터 2003년까지 1년 6개월 동안 미시시피 주립대학교에 재직한 후 앨라배마주에 있는 오번(Auburn University)주립대학교의 기계공학과 교수로 이직하였고 그 후 연료전지와 배터리 연구로 종신 교수 자격을 획득하고 정교수 자격도 취득하였다.

앨라배마주는 미국의 남부에 위치한 주(州)이다. 오번(Auburn University)주립대학은 이 앨라배마주 오번(Auburn)에 위치하고 있으며 1856년 주(州)의 인가로 설립되어 2020년 현재 164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 있는 앨라배마주립대학(www.auburn.edu)이다.

이 대학은 항공 센터, 비행장, 각종 과학 연구소, 기술 연구소, 실험실, 강당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전국적으로 크고 수준 높은 도서관과 경기장을 자랑하며 특히 미식축구팀(Auburn Tigers)의 인기와 높다. 역사상 두 번 전미 미식축구 대학리그에서 우승하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오번대학교에서 석좌교수 임명식때 받은 메달
오번대학교에서 석좌교수 임명식때 받은 메달

최 박사는 슬하에 두 딸을 두고 있는데 큰딸은 미국에서 연방정부 식약청에서 신약 개발을 하고 있으며, 둘째 딸 역시 미국의 유수 의대를 졸업한 후 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최 박사는 미국에서 자리를 잡은 후, 장학사업에 관심이 많아 국내 유수 대학생들 중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모교에 초청하는 장학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들 중에는 벌써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는 장학사업과 관련해 “내가 어릴 적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탓도 있겠지만 교육에 관한 한 계획은 먼 장래를 보고 투자하고 지속적으로 관리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교육은 백년지계(百年之計)라는 의미겠다. 또한 그는 국내에서 개최되는 각종 세미나 관계로 정기적으로 한국을 다녀갔지만 작년과 올해는 코로나 관계로 아직 국내에 다녀가지 못했으며 부정기적으로 몇 년에 한 번씩 고향을 다녀간다.

최 박사는 “향후에 기회가 주어지면 고향을 발전을 위해 일조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으며 이번 오번국립대학 석좌교수 임명에 축하해준 고향에 사는 친구들과 친척들에게 감사하다”는 뜻을 전해왔다.

한편 미국의 석좌교수( endowed professor) 제도는 탁월한 연구 업적 또한 시회 활동을 통해 국제적으로 명성이 있는 기존 교수나 새로 초빙하는 교수에게 기관 혹은 개인이 기부한 기금으로 연구 활동을 지원해 주는 제도로 최고의 영예로 인정되고 있다.

 

■ 최종률 박사의 주요 이력

1981년 한양대학교 공대를 졸업

1989년 3월~ 1991년 독일 베르린 공대 연구원1991년 독일 베르린 공대에서 박사

1991년~1993년 독일 Bosch-Rexroth 회사에서 연구원 근무

1993년~2002년 현대자동차(하이브리드) 이사로 근무2002년~ 2003년 미국 미시시피 주립대학교 공대교수

2012년~현재 앨리바마 오번 주립대학교 공대교수

2020년 오번주립대학 종신 석좌교수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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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충현 2021-01-09 13:44:00
정말 자랑스러운 친구다. 가난하던 시절 1960년대 말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한양공고 전기과에서 함께 공부하던 친구이기에 재작년 울진중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선비교육을 하면서 후배들에게 소개하고 여러분도 꿈을 가지고 노력하면 이런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격려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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