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송이의 소근소근 우리들 속 이야기 12] /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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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송이의 소근소근 우리들 속 이야기 12] / '바이러스'
  • 고경자 다움젠더연구소 소장
  • 승인 2020.09.06 1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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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채만 한 파도가 끝없이 밀려오고 큰바람은 그 파도를 세상 밖으로 날려버리고 있습니다. 이까이꺼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말하며... 또 큰바람이 지나간 자리는 곧게 뻗어 위엄을 알리던 소나무의 허리를 초라하게 꺾어 두었습니다. 겸손하여라~~

인간이 자랑하던 많은 것은 자연에 의해 쓰러지고 부러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관심 밖에 있던 힘없는 풀들과 바람만이 그 자리에 살아있는 듯합니다. 지금 다시 주위를 둘러보게 됩니다. 자연의 힘 앞에 더 높은 세상을 쳐다보던 내가 아닌 나와, 내 발 아래의 힘없고 작은 것이 이제야 보입니다.

내가 아는 네가 아니야~! ‘청소년’ 편

열두번째 이야기<바이러스>

지구에는 인간들을 통제하는 바이러스가 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멈추라고 경고하고 있네요. 인간의 욕망이 이대로 멈출 수 있을까? 짧은 제 머리로 불가능 할거라는 서글픈 생각을 해봅니다.

이런 저런 생각 속에 어릴 적 기억이 납니다.

1980~90년 초 제가 살던 고장에는 어디를 가나 물이 넘쳐 났습니다. 길가다 목마르면 아무 집에나 들어가 물을 달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주인이 보이지 않으면 마당 한 귀퉁이에 있는 수돗물을 틀고 마시고는 떠났습니다. 그 시절 아무 생각 없이 마셨던 그 단맛이 아직도 혀끝에 남아 있네요.

그 시절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나중에는 이 물을 사먹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또 공기도 사서 마시는 날이 올거라고... 어린 마음에 그 말도 안되는 말은 말 그대로 헛소리로 들렸습니다. 세상에 물을 누가 사고 파냐고... 세상에 공기를 누가 사고 파냐고... 말도 안돼. 그렇게 생각했죠.

시간이 흘러 정신 차리고 둘러보니 그런 세상이 왔더군요. 각종 화학물질로 오염된 지하수는 더 이상 그냥 마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편의점 진열장에 다양한 브랜드의 물이 줄을 서서 자신을 선택해주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수기는 필수, 생수는 선택이 된 세상. 물을 사먹는 세상이 왔더군요.

또 2019년이 생각납니다. 미세먼지로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에 필수로 공기청정기가 들어가고, 전광판에는 미세먼지 농도를 알려주었습니다. 또 뿌연 먼지가 세상을 덮고 있었습니다. 파란하늘을 보는 날은 계(契)탄 날이라며 맑은 하늘을 휴대폰에 담아두기 위해 마구 찍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쩌다 이런 세상이 되었을까요?

오늘은 자신을 ‘바이러스’라고 말한 한 아이의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썰을 풀었습니다.

자신을 바이러스라고 말한 이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의 학생이었습니다. 흰종이 모퉁이에 점하나 찍어두고 “이것이 접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흰 종이는 지구입니다. 이 “점”은 바로 바이러스입니다. 이 우주의 또 지구의 관점에서 인간은 쓰레기이거나 지구를 더럽히고 있는 바이러스입니다. 고로 저는 바이러스입니다.

자기 확신이 하도 강한 아이라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렇구나~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바이러스가 다 나쁜 건 아니야~ 행복바이러스도 있잖아~ 라고 말하며 일단 마무리했습니다.

처음 들었던 생각은 이 아이는 어떤 환경에서 양육을 받고 자랐을까? 궁금했습니다. 사람들에게 하는 말투는 도전적이었으며, 겉옷은 낡고 오염되어 있었습니다. 또 모든 활동에 딴지를 걸며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거부하는 친구였습니다. 그땐 답답한 마음만 컸습니다. 조금 많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꿈과 희망에 부풀어 즐겁게 놀아야하는 초등학생 아이가 자신을 아니 사람들을 바이러스라고 말하는 것이....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구가 아파하는 것을 지금 보고 있으니 그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어쩜 이 아이는 저보다 훨씬 큰 세상을 걱정하고 있었겠구나. 철없는 사람은 이 아이가 아니라 바로 나였구나라구요.

니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대지는 피부로 덮여 있다. 그 안에 이 피부는 여러가지 병으로 신음하고 있다. 그 병들 중의 하나가 ‘인간’아라는 존재이다”라구요.

혹 이 친구가 니체가 아니었을까요!

인간이라는 존재가 더 이상 세상에 나쁜 바이러스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모든 이가 스승이다’라는 말이 떠오르며, 그때 그 친구가 잘 커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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