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송이의 소근소근 우리들 속 이야기 '다가오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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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송이의 소근소근 우리들 속 이야기 '다가오지마!'
  • 고경자 다움젠더연구소 소장
  • 승인 2020.05.03 2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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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버킷리스트(Bucket list)와 위시리스트(Wish list)작성하기가 유행할 때가 있었습니다.
죽기전에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여러분들도 유행에 동참하셨는가요...

사실 우리는 굳이 목록을 적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계획이나 규칙에 의해 나의 일상이나 행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은 계획을 보이는 계획으로 바꿨을 때 그 실현가능성이 훨씬 커지고 삶의 만족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오늘 작은 수첩하나 펼쳐서 소소하지만 결코 소소하지 않은 즐거움을 찾아 가는 건 어떨까요.

내가 아는 네가 아니야~! ‘청소년’ 편

세번째 이야기<다가오지마!>

더운 여름이었습니다. 자존감 향상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한 학교를 방문했습니다. 반갑게 인사하는 친구들 속에 보기만 해도 반듯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자세만으로도 대충 짐작 가는 바른생활 소년이었답니다. 프로그램 순서를 알려주고 마음열기 시간을 가지며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겉모습에 숨겨진 다양한 내면의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지요. 앞서 말한 한 친구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이 친구가 보여준 그림은 피를 뚝뚝 흘리는 칼이었어요. 생각지 못한 그림에 잠시 당황했지만 금방 정신을 차리고 진행했습니다. “그림을 설명해 주겠니!”라고...

친구는 조금 망설인 후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자신을 “피를 뚝뚝 흘리는 칼”이라며...

자신의 주위에 친구들이 오면 다 피를 흘리게 된다고...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말을 이어갔습니다. 자신이 맡은 학교에서의 임무가 친구들 벌점 주는 역할이라고요...

그래서 자신이 친구들의 잘못을 볼 때면 어쩔 수 없이 벌점을 줘야하는 위치라고...

이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저는 분노가 올라왔습니다. 도대체 어른들은 뭐하는 사람인건가? 학교는 이들에게 무엇을 하고 있나? 선생님은 무엇을 하고 있나?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답답함이 목까지 차올랐고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 학교에서 ‘친구가 친구를 감시하고 친구가 친구에게 벌점을 주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본 그곳에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졸업해야 하는 아픈 현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들에게 수직적인 명령만하고 있지 않나요. 일방적인 명령이 아니라 먼저 물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너의 생각은 어쩠냐고...” 설령 이들이 틀렸어도 스스로가 말하며 수정하고 고쳐가며 성장할 수 있도록 말이죠. 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아니 상처받더라도 치유될 수 있도록 물어보고 들어줘야 할 것입니다. 과연 이 친구는 어떻게 상처를 치유할까요.

타인에 의해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여러분들은 이런 친구를 만난다면 뭐라고 말해 줄 수 있을까요!

오늘 하루만이라도 말하는 “입”이 아닌 들어주는 “귀”를 크게 열어두면 어떨까요~!

잠시 저의 입에 자물쇠를 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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